사샤 발츠의 <Twenty to Eight>을 보고 글을 쓰다가 왜 (언어가 없는) 무용이라는 사실 자체만으로 벅찰 수 밖에 없었는지 이야기하려다 앞부분이 너무 길어졌다. 공연 감상이라고 하기엔 부적절하지만 아직은 공연 보는게 이렇다,라는 정도의 글은 되겠다 싶어서 그냥 따로 적었다. 감독이나 작품 혹은 공간에 대한 정보는 담지 않았다. 


베를린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본 공연은 Christoph Marthaler 크리스토퍼 마탈러의 <Hallelujah>였다. 광주 예술극장 아워 마스터즈 시즌 중 마털러의 작품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베를린으로 와버려 보지 못하게 된 아쉬움이 있었던 참에 Volksbühne 베를린 민중극장에서 프리미어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예매했었다. Volksbühne는 지난 여행에 이은 두 번째 방문이었다. 사실 그때 누구의 어떤 작품을 보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숙소 앞에 큰 극장이 있었는데 그게 Volksbühne였고 베를린에서 괜찮은 극장 중 하나라는 어렴풋하게 들었던게 생각나 바로 가서 공연을 보았었다. 8시 공연이었는데 끝나고 나오니 12시가 넘었었다. 처음부터 관객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끝날 때 즈음에는 10줄 안팎의 사람들이 무대 앞쪽에 옹기종기 남았었다. 작품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회전 식의 무대나 무대 중앙에 설치된 수로 등 무대 장치를 어떻게 이용하는지나, 무대 위에 실시간으로 카메라맨들이 등장하고 그 이미지가 무대 한편 스크린에 영사되는 방식의 비디오라는 매체를 사용하는 방식들을 주로 보았다. 이런 매체의 전면적인 쓰임은 이제는 한국에서 실험이라 부르기 무색하게 흔한 방식이 되었기에 약간은 공부하는 마음으로 관찰했다. 내용도 이해할 수 없고 시간이 지나도 끝나지 않는 공연장에 끝까지 앉아있었던 건, 4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배우도 작품도 나도 고통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지난함 속에서 서로의 현존을 확인하며 자리를 지켰다. 이번에 본 <Hallelujah>에도 자막이 없었고,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마탈러에 갖고 있는 막연한 이미지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그의 작품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건 스틸컷을 보았을 때 마치 에드워드 호퍼의 회화 작업에서 볼 수 있는 납작하게 눌린 무게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는데, 공연은 스틸컷에서 내가 느꼈던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조명과 무대미술이 만드는 정돈된 색감, 기본적인 연극의 구조는 갖추었지만 극적 전개 없이 대부분 노래로 흘러가는 구성, 특징적인 관계망 없는 인물들 - 이런 것들로 인해 <Hallelujah>는 특정 시공간 속 입체적인 사건이 압축된 평면으로 드러났었다. 마탈러의 작품 전반을 흩어보았을 때 빠지지 않는 유머러스함을 여전히 지니면서 말이다. 감이나 알고 있던 사실을 직접 확인하는 즐거움은 있었지만, 사실 작품에 충분히 집중할 수 는 없었다. 이전의 여행자의 마음과는 달리 삶의 자리를 옮긴 이번에는 작업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견디기 힘들었다. 외국에서 혹은 외국어로 진행되는 공연은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게 되었고, 경험했다는 것 자체로 만족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공연예술을 공부하겠다 왔건만 작품에서 이질감은 어느정도 비참하긴 했다. 아직은 당연한 일이긴 하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집에 돌아와 자질구질한 올해 목표 100가지 목록에 ‚독일어로 된 공연 이해하기’라는 한 줄을 하나 더 적는 정도. 그때는 제대로 된 감상 글도 남기고 싶다. 



<Tessa Blomstedt gibt nicht auf> 

최근 광주 아시아예술극장에서 재공연한 작품. 이 스틸컷 하나로 감독의 정보를 찾기 시작했었다.


<Hallelujah>


사진 출처 Volksbüh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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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환경조각전  

구재회, <서울특별시 마포구 와우산로94(상수동) 홍익대학교 F동 20302호>



 구재회, 서울특별시 마포구 와우산로94(상수동) 홍익대학교 F동 20302,

2.3m X 1.2m X 2.1m (가변)

    구석진 곳에 스펀지 모양의 집 두 채가 있다. 원래 있었던 듯 무심하게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주의 깊게 본다면 그냥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스펀지 집은 자신의 크기와는 맞지 않는 곳에 들어가 있다. 스펀지라는 소재는 유동적이기는 하지만 유연성에는 한계가 있어 자기 자신을 구겨 넣어야 한다. 편하지 않은 듯 다른 장소로 옮겨 간다. 때로 편하게 보일 때도 있지만 완벽하게 들어맞는 공간은 그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서울특별시 마포구 와우산로94(상수동) 홍익대학교 F동 20302호>(이하 <20302호>)는 두 덩어리의 스펀지이다. 각각의 스펀지는 두 채의 집 형상으로 서로 붙어있다. 한 칸뿐인 집이지만 구색은 제법 갖추고 있다. 노란 단색의 스펀지에 새겨진 벽돌 모양에서는 빨간 벽돌이 눈에 선하다. 창문, 계량기, 문고리도 있으며 현관에는 호수가 적혀있다.

 

   302호는 작가가 살았던 옥탑방의 호수이고, 그 숫자를 다르게 배열한 203호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작업실이다. 거주공간과 작업공간인 격이다. 내 집 없는 모든 이들이 항상 떠날 것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는 것처럼, <20302호>는 전시 기간 동안 여러 번 옮겨 다녔다. 살만한 곳을 찾다가 괜찮겠다 싶은 곳이면 다시 자리를 잡았다. 만만치 않은 무게의 스펀지 집 두 채를 옮기는 것은 이사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지만, 조금 더 괜찮은 곳이 있을까 찾아다닌다.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집은 안정을 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하지만 스펀지로 만들어진 <20302호>는 유약하다. 쉽게 더러워지고 너덜너덜해진다. 서 있는 모습 또한 위태롭다. 구석에 대각선으로 비집고 들어가 땅에 발 딛지도 못하고 허공에 매달려있다. 이보다 편한 장소를 찾을 때도 있지만, 그 곳에서도 낑겨 있는 건 매한가지이다. 그렇게 옮겨 다니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이 현실의 모습이다. 내 집 마련은커녕 계약 기간이 만료될 때 마다 불안해해야 한다. 모퉁이 한 구석이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그 많은 노는 땅은 모두 임자가 있다. 미술이라는 지대도 그렇다. 권위로 가득 찬 그곳에서 함께 살아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럼에도 살기 위해서는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수밖에 없다. ‘아프니까 청춘’이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청춘이든 아니든 덜 아파야 한다.


 


  <20302호>는 우리의 상황을 보여주지만 냉소나 체념은 아니다. 덜 아프기 위해 자신의 자리를 만들려는 움직임이다. 틈이 없는 공간(space)에는 거대서사만 있을 뿐 개인의 이야기는 없다. 지각할 수 있는 감각은 제한되어 있으며 개인의 경험은 말소된다. <20302호>가 전시된 환경조각전도 마찬가지이다. 전시장을 벗어난다는 이유로 눈에 띄는 형태를, 흠집 하나 없는 매끈한 상품처럼 좋은 퀄리티를 요구받는다. 작품들은 밖으로 나왔지만 강요의 틈바구니에서 그저 물리적인 공간을 떠돌게 된다. 스펀지 집은 이 공간을 장소(place)로 변환시킨다. 필연적으로 부유하는 삶이지만 적극 나서서 자신이 위치한 땅을 경험하며 스스로의 장소로 만드는 것이다. 이로 인해 견고하게만 보이던 공간에 균열이 생기고 개개인이 들어설 장소가 생긴다. 두 채의 스펀지 집은 스스로를 변형시켜가며 힘겹게 자리를 만들어간다.

 

   이 과정에 스펀지라는 소재는 적극적으로 동참한다. 스펀지는 상처 입기 쉽다. 그러나 <20302호>가 입은 상흔은 능동적인 흔적이다. <20302호>의 스펀지는 위치한 공간을 자신의 감각으로 온전히 지각하기 위해 그 곳을 흡수한다. 그 결과 모양이 변형된다. 스펀지의 탄력성에는 한계가 있어 복원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완벽하게 원형으로 돌아오지도 못한다. 그렇게 이동하며 경험하는 장소마다 쌓이는 상흔은 굳은살이 된다. 틈을 내어주지 않는 공간과의 마찰로 인해 생긴 단단한 살이다. 

 


   살아가는 매 순간이 투쟁이다. 살아갈 틈새는 없고 그로 인해 자신의 존재마저 희미해지는 공간에서 애써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20302호>는 부유의 삶을 거부한다. 스펀지 집이 비집고 들어가는 구석은 단지 물리적인 공간만은 아니다. 개인의 사유는 배제하고 거대한 논리만이 지배하는 현실의 공간이다. <20302호>는 덜 아프고 더 잘 살기 위해 계속해서 움직인다. 그리고 이동의 과정은 스펀지 집에 아로새겨진다. 형상은 결코 완성되지 않지만, 자신의 감각으로 지각한 장소들을 몸에 새겨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20302호>는 이동할 수밖에 없는 불안정한 삶 속에서 스스로를 확립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원문 

http://blog.naver.com/uploadsoon/220056595880


관련 기고

 

2014 홍익대학교 조소과 환경조각전 이정원 <홍익발언대> 

http://blog.naver.com/uploadsoon/220092250562

 2014 홍익대학교 조소과 환경조각전 총평

http://blog.naver.com/uploadsoon/220092316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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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희 <나열된 계층의 집> 

마포구 창전동, 서교동, 동교동 그리고 상수동 일대 (2014.5.18-6.15)



1.


<나열된 계층의 집>은 다섯 개의 공간을 바탕으로 한다. 각 공간 혹은 공간을 이어가며 여러 참여 작가들의 작업이 진행된다. 전시가 이루어지는 공간들은 있지만 동시에 없는 공간들이었다. 어떠한 이유에서 제 역할을 잃은 공간들은 버려졌다. 버려진 공간들은 그곳에서 일어날지도 모를 일들을 방지하기 위해 으레 폐쇄된다. 담을 것이 없어진 공간 자신마저도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 비워졌다. 그렇게 공간은 없는 공간이 되었다.


김동희가 작가가 발견한 공간들은 ‘집 The House’, ‘오픈 가든 Open Garden’, ‘주차장 Garage’, ‘서교센터 Seogyo Center’ 그리고 ‘프리홈 Free Home’ 총 다섯 개다. 이들은 모두 마포구 창전동, 서교동, 동교동 그리고 상수동 일대에 위치해있다.


‘프리홈’은 공간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새로운 것이 아님을 알려주는 장소이다. 홍익대학교 F동의 외부계단 꼭대기에 위치하는 이곳은 그저 통로의 끝으로, 버려진 공간이었다. 2011년 살고 있던 월세방이 재개발되면서 작가는 현실적인 문제를 안고 이 공간에서 거주하는 <프리홈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다른 집을 구하기 전까지 ‘프리홈’은 약 5개월가량 작가의 거주 공간이 되었고, 이후 간간이 전시장으로 사용되었다.


이를 제외한 나머지 네 개의 공간은 모두 이번 프로젝트 속에서 새롭게 발견된 공간들이다. ‘동강해물탕’이라는 음식점 옆 굳게 닫힌 철문에서 시작하는 ‘오픈 가든’은 P 아파트로 통하는 골목으로, 여기에는 작은 정자가 있다. 이곳은 홍대 번잡한 상권 한 가운데 위치한다. 그러다 보니 이 정자에 아파트 주민이 아닌 사람들이 모이다 가기 시작했고 주민들은 결국 이 길을 폐쇄했다.


‘주차장’은 작가가 살고 있는 건물에 위치한 주차장이다. 작가가 삼 년 동안 살면서도 이곳이 있는지 알지 못했을 정도로 ‘주차장’은 주차장으로서의 역할을 잃고 셔터로 닫혀 내부 공간을 비워두고 있었다. ‘서교센터’는 서교예술실험센터 지하에서 외부로 향하는 비상계단으로, 흔히 전시장으로 쓰이는 지하 다목적실과는 달리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공간이다. 마지막으로 ‘집’은 홍익대학교에서 창천동 삼거리로 향한다면 누구나 지나쳤을 공터이다. 공터 아래로는 경의선이 지나고 위로는 와우고가차도가 있다. 이 공간은 숲길 부지로 예정되어 있으나 오랜 시간 동안 휑하게 비어있다.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은 공간은 곧 아무것이나 담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적 의미를 잃어버린 버려진 공간은 규범으로부터 자유롭다. 김동희 작가는 공간을 바탕으로 한 관계에서 통상적인 계약관계를 따르지 않아도 되었다. 대신 작가는 관리소장, 공무원, 건물주, 세입자, 아파트 동대표, 공간 인근 주민들 등 공간을 둘러싼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과의 협의를 통해 장소를 개방했다. 공간을 둘러싼 관계에서처럼, 목적 없는 공간에 정해진 것은 없다. 김동희 작가는 발견하고 개방한 공간에 새로운 장을 모색한다. 공간은 잃어버렸던 역할을 되맡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을 부여받는다.



2.


<나열된 계층의 집>은 김동희 작가의 기획이지만, 동시에 여러 작가의 작업들로 이루어져 있다. 설치, 퍼포먼스 등의 작업들은 한 공간에 한정되기도 하고 공간들을 이어 진행되기도 한다. 장소와 작업의 계층이 겹쳐져 김동희 작가의 배치는 다양한 층위를 띄게 된다.


‘프리홈 Free Home’ - 김유신, <incognizable sound(인식되지 못한 익숙한 소리들)>


김유신 작가의 <incognizable sound(인식되지 못한 익숙한 소리들)>는 김동희 작가가 ‘프리홈’에서 거주했던 이후로 이곳에서 열리는 네 번째 전시로, <나열된 계층의 집> 전시 기간과 겹쳐 전시된다. 통로를 따라 계단을 쭉 오르면 좁은 흰색 공간이 나타난다. 그곳에는 대형 스피커와 스피커가 뿜어내는 소리를 시각화한 그림이 걸려있다. 특이한 것은 이 소리가 온몸으로 들린다는 것이다.


작가는 가청주파수와 비가청주파수 경계에 있는 소리에 관심을 둔다. 들리지 않게 되는 주파수는 20Hz 이하이지만, 이번 전시에서 들려주는 소리는 스피커 사양 상의 한계로 인해 40-50Hz이다. 이 영역의 소리는 귀로 들리면서 동시에 진동으로 몸에 울려 퍼진다. 가슴과 배에서 느껴지는 떨림을 통해 소리를 듣는 다른 방식을 인식하게 된다. 청각 혹은 촉각 등 규정된 감각으로는 정의할 수 없는 새로운 감각을 발견한다.




‘오픈 가든 Open Garden’ - VERYTHINGS, <VERYTHINGS RESORT>


‘오픈 가든’이 위치한 P아파트 통로는 홍대와 맞물려있다. 한적한 곳에 위치했더라면 괜찮았겠지만, 번화가 한가운데 위치하기에 오가는 사람이 많아 폐쇄하게 되었다. 그런데 정신없는 홍대를 걷다가 눈에 띄지 않는 골목으로 들어가면 완전히 다른 곳이 나온다. 오랫동안 방치된 아파트 통로는 발견되지 않은 미지의 세계마냥 풀이 우거져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곳에 하얀 자갈을 깔고, 타일 사이사이 돋아난 이름 모를 풀들처럼 자갈 위에 듬성듬성 선인장 화분을 놓았다. 또한 자갈처럼 흰 타월이 깔려 있어 누워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


‘모던 유토피아 리빙(Modern Utopian Living)’ 컨셉을 중심으로 ‘자연과 음식’을 실험하고 발전시키는 크리에이터스 그룹 베리띵즈(VERYTHINGS)는 이곳에 유토피아를 만들어낸다. 현대 삶에서 유토피아적인 삶의 방식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일상적인 삶의 터전과 빠른 발걸음이 지나가는 거리 사이를 이어주는 짧은 골목에, 여기만큼은 목적을 쫓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다. 작은 철문 하나를 두고 하늘을 볼 수 있는 마음이 없어졌다 생겨난다.




‘주차장 Garage’ - 노상호, <Marchen Box - Daily Fiction>


‘주차장’에 설치된 구조물은 원래 이곳에 있을 계획은 아니었다. 맞은편 아파트 103동 벽에 설치하려 했으나 협의를 얻어내지 못했다. 대신 작가가 3년 동안 거주한 건물 사장님과 주차장 옆 세입자의 승낙을 통해 이곳 ‘주차장’에 일시적으로 세워두게 되었다. 주차장 셔터를 올려 들어가면 구조물과 노상호 작가의 <Marchen Box - Daily Fiction>전시를 볼 수 있다.


구조물 끝에 놓인 의자에 앉으면 <Marchen Box - Daily Fiction>의 설명서가 눈에 띈다. 설명서대로 녹음 카세트를 틀면 작가가 읽어주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이야기에 맞추어 작가가 그린 이미지 슬라이드를 프로젝터에 넣는다. 독일어 "Marchen"은 “동화”로도 번역되기도 하지만 노상호 작가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메르헨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표기한다. 메르헨은 ‘화롯가의 이야기’라는 본뜻을 가지고 있으며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시간, 장소 그리고 인물에 대한 이야기이다. 정해진 것이 없기에 누구의 이야기도 될 수 있다. 카세트에서 너의 이야기를 듣고 그림 속에서 나를 본다.



‘서교센터 Seogyo Center’


‘서교센터’는 서울시 창작공간 중 한 곳인 서교예술실험센터에 위치한다. 사회적 신뢰도는 공공기관에서의 전시를 통해 전시와 함께 부가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나, 이는 사람들과의 협의를 만들어 나가는 데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김동희 작가는 서교예술실험센터를 택해 사회적 신뢰도를 얻는다. 그러나 작가가 전시 장소로 선정한 ‘서교센터’는 사회적으로 규정된 신뢰도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듯한 장소이다. 작가는 흔히 전시장으로 이용되는 지하 1층 다목적실이 아니라, 이곳에서 외부로 향하는 비상계단을 사용했다. 전시가 진행되는 비상계단은 매우 좁고 짧다. 작가는 이곳에 ‘동강해물탕’에서 버려진 간판을 세운다. 간판에는 바다와 바다 속 물고기들이 있다. 간판이 뿜어내는 파란색 빛과 좁은 공간의 탁하고 후덥지근한 공기는, 어디서 오는지 모를 비릿한 냄새를 풍긴다.



3.


여러 전시와 더불어 오프닝 날에는 퍼포먼스도 진행되었다. 이날에는 수박과 음료를 나누어줘 휴양을 즐기게 해준 VERYTHINGS의 개장 서비스, 박혜민 작가의 투어 퍼포먼스 그리고 베이시스트 조르바와 INstadio Movement가 함께하는 퍼포먼스가 진행되었다.


박혜민 투어 퍼포먼스, <잃어버린 설이를 찾아서>


박혜민 작가의 투어 퍼포먼스 <잃어버린 설이를 찾아서>는 ‘서교센터’에서 시작해서 ‘집’을 끝으로 공간들을 안내한다. 박혜민 작가와 함께 둘러보는 공간 중에는 <나열된 계층의 집>에는 없는 ‘창천 데시앙 자생 식물원’이 있다. 설명에 따르면 ‘창천 데시앙 자생 식물원’은 쉽게 볼 수 있는 나무들이 자생적으로 살아 생긴 곳으로, 2013년 '서울 내 우리가 지켜야 할 10곳'으로 선정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사실 ‘창천 데시앙 자생 식물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공간은 ‘집’이 지금 있는 자리에 위치하기 이전에 염두 했으나 협의를 이끌어 내지 못해 포기한 공터이다. 박혜민 작가는 서울 내 이국적인 장소들을 찾아 중국, 인도 등의 나라를 허구적으로 재현해 여행상품을 판매하는 'Hpark 여행사‘를 운영한다. 이번 투어 퍼포먼스에도 허구의 공간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는 현실과 떨어져 있지 않다. 작가는 허구를 통해 실재를 소환한다. 아무도 모르게 자라고 있던 식물들을 호명하면서 동시에 보지 못했던 공간에 주목하게 한다.


‘집 The House’ - <조르바 x INstadio Movement>


‘집’은 이와 조금 떨어진 공터에 자리 잡고 있다. 김동희 작가는 이곳에 실재 건물 크기와 같은 파란색의 블루프린트를 설치했다. ‘집’에서는 베이시스트 조르바와 현대무용 그룹 INstadio Movement가 함께하는 퍼포먼스가 진행되었다. 선율과 안무는 블루프린트 위에 앉은 관객들의 몸을 오르내리며 건물을 지어나간다. 평면의 계획뿐인 건물에는 정해진 것이 없다. 순간의 소리, 몸짓이 내뿜는 호흡 그리고 고가차도를 지나며 걸음을 멈추는 사람들이 모여 집을 만들어나간다. 집은 각자 다를 것이다. 그러나 집의 기반은 모두 같은 곳에서 시작한다. 울퉁불퉁한 공터 위 작가가 평평하게 만든 블루프린트는 그런 기반이 된다.





4.


제 일 없는 공간은 인식에서 없어져 간다. 그러나 그 빈자리는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무한한 곳이다. <나열된 계층의 집>은 이런 다섯 개의 공간을 발견하고 제시한다. 공간은 폐쇄된 장소에서 개방된 장소로 변화하지만, 방치된 공간이 지니는 자유로움은 유지된다.


다섯 개의 공간들은 시작부터 규범적인 계약관계가 아닌 협의의 과정으로서 시작되었다. 전시가 진행되면서도 예정되었던 공연이 민원으로 취소되기도 하며 조율은 끊임없이 진행 중이다. 하나의 합의가 없을 때 우리는 다양한 생각을 떠올려볼 수 있다. 작가가 제시한 공간 속에서 관객들은 잊었던 것들 혹은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한다. 그렇게 김동희 작가가 제시한 공간은 가능성의 공간이 되고 사람들은 이곳에 모인다.


건물로 가득 찬 홍대 일대에 사람들이 멈추어서거나 모일 곳은 없었다. 홍대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그 속의 사람들도 건물처럼 목적을 부여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목적 없는 사람은 잉여로 호명되며 사회에서 삭제된다. 개방된 공간 <나열된 계층의 집>은 모두가 모이는 공간이 되어, 빽빽한 세상 속의 틈이 된다. 평면의 계획도가 남은 자리에서 우리는 각자 하나의 가능성이 되어 크고 작은 높낮이를 만들어낸다. ■




* 사진출처 _ <나열된 계층의 집> 페이스북 페이지 / 프로그램북 캡쳐(지도) /  개인촬영 컷 


원문 http://indienbob.tistory.com/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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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여행할 때 페이스북에 작성했던 글. 블로그를 네이버에서 검색 가능하도록 설정한 후 가장 먼저 옮기는 글이다. 블로그를 쓰는 이유에는 일단 나 스스로 무언가 기억하는 버릇을 들이고 싶은 것도 있지만,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다. 그게 감정일수도 있고, 정보일 수도 있고. 이 글은 정보성의 글이다. 어떤 사실을 안다는건 그만큼의 책임이 따른다. 그렇지만 무지에서 파생된 폭력들을 멈출 수 있다면, 나의 삶의 정도를 영위하는 선에서는 그렇게 해야만 한다. 



베를린 중심지 중 하나는 알렉산더 광장인데, 여기 근처에 오면 많은 사람들이 Primark 브랜드의 쇼핑백을 들고다닌다. 어떤 곳일까하는 궁금증에 들어가보았더니 사람들이 많이 갈만했다. 가격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저렴했던 것. 예를 들어 나는 목도리 하나를 샀는데 그건 겨우 1유로밖에 하지 않았다. 모두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모든 옷들이 저렴했고 사람들은 큰 자루에 옷을 담고 있었다.

1유로에 목도리를 살 수 있다는건 좋은 일이었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어떻게 이렇게 저렴할 수 있는거지.

당연하게 싼 노동력을 위해 동남아시아 등으로 이전하는 의류회사들을 생각했다. 그러다 숙소에 와서 찾아본 기사는 충격적이었다.

Primark은 스웨덴의 H&M, 스페인의 Zara와 함께 유럽의 대표적인 패스트패션 브랜드 중 하나일 정도로 규모가 크다. 그런데 그 회사의 옷에 도움을 요청하는 메세지가 담긴 쪽지가 들어있거나 문구가 새겨져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 쪽지들에 따르면 중국 감옥의 수감자가 열악한 상황에서 15시간 동안 강제노동을해서 만든게, 바로 우리가 산 그 옷이라는 것이다. 회사는 부인했지만 생산지를 밝히지 못했으며, 심지어 불법 증축한 방글라데시의 프라이마크 하청 공장 ‘라나플라자’가 무너져 노동자 1134명이 사망하고 2438명이 부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했다고 한다.

내가 무얼 샀는지 끔찍했고 허망했다. 그리고 무서웠다. 그저 싼 옷을 찾았던 것처럼 살아가는 매 순간, 거대한 사회 속에서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죽여왔고 해쳐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나를 죽이는 일이기도 하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겠다는 나의 삶의 방식은 너무나도 쉽게 무너질 수 있었다. 
감각할 수 없는 규모로 속도로 작동하는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괴롭지만 진실을 알기 위해 다가가야 하고, 나도 모르게 내가 원하지 않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는 온몸으로 저항해야 한다. 나 자신으로서 살고 싶다. 

(2015.02.03 페이스북 작성)


관련 기사 - 시사저널, <“우린 하루 15시간씩 황소처럼 일한다”> 

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62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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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교보문고 격인 Dussmann에 가서 새 책들을 구경하는 것도 Pro qm이나 Do you read me 혹은 Motto에 가서 요즘 나오는 독립출판물 혹은 예술 관련 책들을 보는 것도 좋지만, 중고서점이나 장터 곳곳의 중고책들을 보는걸 가장 즐겨한다. 베를린 어느 장터에 가나 중고책들을 파는 매대가 있다. 그럼 노란색이나 알록달록한 책들 앞으로 가서 표지를 확인하며 끝에 있는 책까지 넘긴다. 노란 책은 제목을 확인하는데, 아는 저자가 나오거나 익숙한 이름 그러니까 Gedichte 혹은 Theater 등이 나오면 부제를 읽어 첫번째로 거르고 더 관심이 가는 책들은 목차를 흝어본다. 저자에서 멈춘 경우는 안에까지 흝어보는 경우는 드믈고, 제목을 해석해서 읽고 싶었던 (아직은 소유하고 싶은 책에 불과하지만) 책인지 확인한다. Tezte zur로 시작하는 엔솔로지 비슷한 책일 경우에 목차를 확인하는 편이다. 알록달록한 책은 제목을 보긴 대개 알지 못하는 이름뿐이고 표지를 보고 감으로 책을 펼친다. 살 때도 주로 적당한 독일어를 곁든 삽화가 실린 책을 산다.


두 책 모두 처음에는 디자인 때문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작년 여름에부터 알게 된 이 책들은 처음보는 순간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노란 책들은 가뜩이나 작은 내 손보다 작은데 표지에는 저자, 제목, 부제 한 줄 긋고 Reclam이라고 적혀있다. 때때로 그 아래 그림이나 사진이 들어갈 때도 있다. 시각적인 디자인 구성만큼이나 물질적 구성 또한 미니멀함의 극단이다. 스치듯 지나가는 가벼운 괭지 그리고 읽기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만 최대한 줄인 글씨 크기와 줄 간격. 사실 맞기는 하다. 여기 있는 적힌 내용들에 뭘 더 더하겠는가. 정신사납게 화려한 표지디자인이나 거추장스러운 구성 대신 여기 적힌 내용들을 정갈하게 읽어내려가면 된다. 그렇다고 지루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듣기만 했던 책과 처음 만나 내 손으로 한장한장 넘길 때의 기분을 이 샛노랑 색의 표지가 대변하고 있다. 더군다나 이 시리즈는 말끔하고 단정한 옷차림으로 변주를 줄주 아는데, 기본 색인 노랑색만큼이나 잘빠진 빨강 표지 책은 원어로 쓰여있고 스터디 가이드 역학을 책은 파랑색은 식이다. 때때로 이벤트도 준비할 줄도 안다. 이북 책을 소개할 때는 아날로그의 기본인 노랑색과 이북임을 나타내는 하늘색을 섞기도 한다. 한번은 빨간색에 대한 책 비슷한 제목으로 빨간 색에 대한 시들을 모아 빨간 색 글자로 출간한 책을 본적도 있었다. 알록달록 한 책은 대개 하나의 패턴을 갖고 있다. 과하게 화려하다고 생각될 때는 드믈고, 주로 모자이크나 적당한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다. 통일 이전 독일을 다룬 영상에서 보던 벽지의 축소판이다. 물론 노란 책과 마찬가지로 디자인은 모든 책이 동일하다. 단지 그 무수한 책들이 제각기 다른 패턴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둘 모두 대형서점에서는 한 자리 씩 꿰차고 있고 중고매대에도 같은 제목 없는 책들이 서로 다른 책들이 놓여있을만큼 많다. 물론 세상에 책이야 많겠지만 단하나의 시리즈로 이렇게 많은 책들이 오래 전부터 그리고 지금까지 꾸준히 나오고 있었다. 노란 책은 Reclam 출판사의 Universal-Biliothek 시리즈이고, 패턴이 있는 책은 Suhrkamp 출판사의 Insel bücherei 시리즈로, 둘 모두 독일에서 오래 전부터 제 자리를 지켜온 출판사들이다. Universal-Biliothek이 오늘날 Reclam을 대표하게 된 것만큼이나, Reclam은 Universal-Biliothek와 함께  본격적으로 출판을 시작하였다. 그목표는 지금 내가 덕을 보고 있는것과 같이 서양의 고전문학작품들을 싼 가격으로 보급하는 거였다. 두께에 따라서 다른데 아직도 2.50유로에서 12유로 정도면 살 수 있다. 싼 가격에는 미니멀한 구성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저작권에서 자유롭다는게 큰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1837년 프로이센에서 ‚학술 및 예술 작품의 출판 및 복제에 대한 저작권자의 보호’라는 법률을 제정했고, 그 법률에 따르면 1837년 이전 사망한 작가들의 저작권은 30년 후인 1867년 만료되었다. 이 만료를 기다리며 준비해온 Reclam 출판사는 1867년 괴테의 <파우스트> 제 1부와 제 2부를 시작으로 3일만에 40여권을 출간했고, 1943년에 7600번째 책을 낼 정도로 계속해서 성장했다. 한국에서 잘 알려진 영국 ‚펭귄북스’마저도 Reclam의 모습을 보고 1936년 문고본을 시작했다.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목록을 보고 싶었지만 그건 찾지 못했고,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최근 에디션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Stadtführer Berlin>˚은 8090번째로 1985년 출간되었다. Universal-Biliothek은 주로 제목으로 고르고 Insel bücherei는 표지나 삽화로 확인하는 나의 습관은 이 시리즈의 성격에 적절한 것이었다. Insel bücherei 시리즈도 대중에게 저렴한 값의 좋은 책을 보급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애초 Reclam과 경쟁을 원하지는 않았다. 처음 표지를 장식한 무늬만큼이나 고전보다는 유들한 문학, 에세이 등으로 시작했다. Insel bücherei는 1912년 당대 인쇄기술의 발달과 독자층의 확대로 아무 끄적임이나 인쇄하는 출판시장이었지만, 유대계 작가들의 책을 펴내거나 당대 실험적인 글들을 소개했던 Suhrkamp 출판사의 성격상 저렴하다고 아무 글을 실지는 않았을 것이다. 표지만큼이나 컨텐츠도 다양한데, 저번에는 고려시조를 독일어로 번역하고 설명한 책을 찾기도 했었다. 반면 좀더 학술적인 글은 다른 시리즈로 출판하는 것 같은데, 갖고 있는 벤야민의 책은 지루한 겉모습을 하고 있어서 같은 출판사의 책이라고 생각치 못하다가 이번 글을 쓰며 책들을 확인하며 알게 되었다. 


˚ 롤리타로 유명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왜 도시 베를린을 안내하는 책을 썼나 의아했었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베를린에서 살다가 2차세계 대전 중 뉴욕으로 망명했다고 한다. 인생의 꽤나 긴 시간을 베를린에서 산 셈이다. 



Kapitel Zwei Deutschkurs Berlin http://kapitel-zwei.de/

수업 중 종종 시나 소설 발췌를 다루기는 하는데 아무래도 학원 수업이다 보니 욕구를 채우기는 어렵다. 수업은 교재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나 기본적인 문법과 단어 설명이 있고 이후 텍스트를 바탕으로 한 대화 위주로 진행된다. 이 점이 싫다는 한국인들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문법같은건 혼자서도 공부할 수 있고 텍스트도 책으로 따로 읽으면 되니 대화 시간이 많은게 더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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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도 우아하고 가볍게 움직일 수 있다사실을 알지 못했다. 물속에 있을 때면 그 짧고 굵은 다리를 아주 살짝씩 움직여 부드럽게 앞으로 뻗어 나아간다. 귀여운 얼굴로 가만히 있으면 길들임에 대해

이야기할 것만 같은 사막여우는 애완동물로도 기른다고 들었기에, 야행성 동물일 거라 생각해보지 못했다. 하마가 큰 덩치로도 움직일 수 있는 커다란 통유리 수조가 있다면 육중한 몸으로 매끄럽게 헤엄치는 하마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관람객은 다소 불편할지라도 조명은 최소화하여 야행성 동물에게 적합한 공간이 있다면, 사막여우가 야행성 동물이라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 수 있다.


베를린 동물원은 1844년에 처음으로 문을 연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오래된 동물원이다. 베를린 동물원에는 아직도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건물을 본뜬 입구가 있는데, 아프리카와 아시아 그 어딘가 어설프게 이국적인 모양새다. 그러니까 인간의 이성으로 모든 것을 분류하고 파악하려 동물원, 박물관 등을 만들었던 계몽주의나 오리엔탈리즘 등을 배경으로 만들어졌을 테다. 동물원이 있어야 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없어야 답한다. 인간의 이성 체계가 지닌 감각의 한계처럼 동물의 우리는 자연 그대로의 서식지에 비해 한없이 비좁다. 종 다양성 보존을 들먹이기엔 동물원은 엔터테이먼트 장소일 뿐이다. 동물원에서 순기능을 찾아야 한다면 그건 교육적인 목적일 텐데, 한 생명을 배우기엔 동물원은 그들의 세계에서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다. 지금까지 동물원에서의 경험으로는 하나뿐인 기능을 수행하기는커녕, 생명을 하찮게 여길 수 있는 반 교육적인 환경만을 보아왔다.


중고등학교 시절 비뚤어진 마음으로 동물원에 가는 게 연례행사였다. 서울대공원에 있는 히말라야에서 온 설표는 회색빛 좁은 우리에서 혼자 지내며 해가 갈수록 새하얀 털 대신 이끼의 찌든 색으로 뒤덮여갔다. 어린이 대공원에는 오랑우탄 한 마리가 마찬가지로 비좁고 휑한 우리의 혼자 신경질적으로밖에 볼 수 없는 걸음걸이로 왔다 갔다를 반복한다. 갈 때마다 공격적인 모습으로 관람객의 안경이나 핸드폰 등을 낚아채 가더니 언제부턴가 유리 벽으로 바뀌어있었다. 연례행사를 중단한 건 서울대공원 아메리카테이퍼 우리에서였다. 아이들이 테이퍼한테 침을 뱉고 있었다.옆 표지판에는 아메리카테이퍼는 멕시코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동물로, 그들의 조상이 환생했다 믿는다고 적혀 있었다.


한발 물러서 이미 존재하는 동물원을 한순간 없앨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동물들이 그나마 잘 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면서 교육의 기능을 충족시키고 동시에 동물들을 최소한 생명으로서 존중할 수 있도록 구조화하는가의 문제가 남는다.  동물원이 사자가 초원에서 하품하고 사슴이 초원을 뛰노는 ‚순수한 자연’을 보여준다는 환상을 버리고서 말이다. 베를린 동물원 표지판에서 눈에 띄었던 건 그 동물이 죽이는 동물과 죽임을 당하는 동물을 표시해 놓았던 건데, 모든 동물이든 죽임을 당하는 동물에는 사람이 그려져 있다. 마다가스카르에서만 서식하고 그 섬에서 가장 큰 포유동물인 포사에게 해를 입히는 건 사람뿐이다. 그리고 어느 관이든 실내 우리 한 칸은 도마부터 냄비까지 잘 갖춘 부엌으로 꾸며져 있었는데, 조류 관에는 옆에 다른 우리처럼 미세한 철조망이 달린 것처럼 기존의 우리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사람들 동물들이 어떤 음식을 먹는지 지나가며 보거나 사육사가 음식을 준비하는 걸 구경한다. 고기를 큼지막하게 깍뚝깍뚝 썰자 한 아빠는 아이에게 저거 봐 오늘 얘네 굴라쉬를 먹겠구나, 실없게 말했던 것처럼. 여기에 촘촘히 먹이 주기 프로그램 일정을 짜놓는다. „먹이를 주지마십시오. 우리가 이 동물들이 먹어야 할 음식을 제공합니다.“ 표지판 글씨를 아직 읽지 못하는 아이들도 동물들은 자신들의 밥을 먹는다는 걸 아주 쉽게 알 수 있다.


이곳보다 더 좋은 동물원은 많은 것이다. 수마트라오랑우탄이 얽히고설킨 긴 털과 구분할 수 없는 밀집을 지겹도록 느리게 골라내는 걸 지켜보다가 눈이 마주쳤는데, 더는 아무 기대할 것 없다는 그 눈빛이 두려웠다. 이곳을 포함해 어느 동물원이나 그것이 동물원인 이상 완벽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식욕이나 성욕같은 본능 혹은 감정을 따라서 무엇인가 얻으려 갈구할 수 있고 그걸 위해 움직일 수 있는 세계는 동물원 밖에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주어진 동물원이라는 틀에서 오늘은 사막여우가 원래는 어떤 생활을 하는지 체험할 수 있었고, 하마가 갖고 있는 육중한 몸과는 다른 움직임을 보았다. 야행성 동물관과 하마의 집이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지도에 별표쳐져 있던 것도 이런 이유들 때문일 것이다. 동물원을 돌아다니며 겨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물었던 친구의 작업이 떠올랐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대부분은 다르거나 틀리다. 결국 새롭게 알게 되는 것도 그게 맞는건 아닐테다. Paula라는 이름의 하마는 또 다른 습관을 가지고 있겠지. 하마에 대해, 사막여우에 대해, 사람과 동물에 대해 그러니까 무언가를 다르게 볼 수도 있다는 걸 경험으로 이끄는 동물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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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학원에서 블로그에 글 세 편을 쓰고 돈을 받기로 했다. 주제는 베를린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느냐, 였다. 학원 가방이 담긴 사진과 짤막한 수업 소개 말고는 별다른 홍보 내용을 담지 않아도 된다. 처음 제안했던 주제는 1 베를린 미술 공간 소개 2 베를린 공연 공간 소개 3 베를린 페스티벌 소개였고, 국가가 주관하는 기관이나 행사는 이미 많이 알려져있기에 제외하려 했었다. 그렇지만 주어진 350-400 단어로는 한 주제를 한 글에 담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했다. 결국은 첫번 째 주제를 쪼개어 새로운 목록을 제안했다 -1 베를린 국립 미술 공간 2 오늘날 베를린 미술 환경을 가능하게 한 사립 미술 공간 3 베를린 미술 행사. (2016.03.30 수정: 학원 글은 결국 계획과는 전혀 다른 주제를 쓰게 되었다. 여기서 소개한 주제는 추후 천천히 쓰는 걸로.)



Pergamon Altar, Pergamonmuseum


이 글은 인트로만 하다 끝나겠지만, 먼저 베를린 국립 미술 공간을 소개하려 한다. 뮤지엄인젤(Museumsinsel, 박물관 섬)을 비롯한 박물관, 미술관들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소개가 있긴하지만 그와는 다르게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 혹은 하고 싶은/할 수 있길 바랬던 이야기들이 있었다. 통째로 가져온 페르가몬 재단 이름에서 따온 페르가몬뮤지엄(Pergamonmuseum)은 뮤지엄인젤에서 꼭 가봐야 할 곳으로 평가받는다. 모든 소개에 등장하는 찬사에도 불구하고 내가왜 이 곳에서 후미진 초등학교 층계에 페인트가 떨어져나가는 초원 그림을 배경으로 두고 놓여진 동물 박제를 보는 것과 같은 당혹스러운 이질감을 느꼈는지는 근대 국가의 태동 등에 진 베를린 박물관들의 탄생으로 설명해보려 할 수 있다.  또 하나, 근대 이후의 미술을 다루는 박물관들을 가보면 소장품과 작품 배치 전략에서 MoMa가 가꾸어 놓은 서양미술사와는 확연히 다른 길을 걷는다. 그러면서도 꾸준히인상주의 등 ‚일반적인‘ 서양미술사와의 연관 관계를 획득하려는 은연 중의 노력도 보인다. 이런 식으로 확립하려 하는 이들만의 역사는 무엇인지, 왜 혼자서만 다른 서사를 세우려 하는지 궁금했다.


Sammlung Boros


처음 주제를 설정할 때 국가 기관을 제외하려 했던 이유 중 하나는 지루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거였는데, 이런 이야기들이 지금 많은 사람들이 베를린으로 몰리는 것과 동떨어져있지는 않다. 뮤지엄인젤의 박물관들은 캐롤 덩컨(Carol Duncan)이 설명하는 의례로서의 미술관의 전형이다. 외관상으로는 너무나 당연하게 신전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한 미술관이 건축 및 컬렉션 배치 등 구조적 장치로 자신들이 신격화한 역사를 섬기도록 하는 것은 이제는 고리타분 해진신전 모습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화이트큐브를 거쳐 더 세련되고 영리한 방식으로 역사를 재설정한다. 예약을 해야만 입장이 가능하나 몇달치 예약이 밀려있는 Sammlung Boros는 개인 컬렉션 갤러리인데, 세계대전 당시 만들어졌다가 전후 퇴폐문화의 성지로 역할했던 벙커에 자리잡았다. 이 곳은 벙커라는 광대하고 꽉막힌 실내 공간만이 수용할 수 있는 동시에 공간에 압도당하지 않는 전시를 설치작업 위주로 보여준다. 오너인 Boros 부부는동시대 작품들을 수집하고 2년에 한번씩 작품을 교체하여, 작품 생산 타임라인과 발맞추어 현대미술의 새로운 서사를 쌓아나간다. 한편 오늘 베를린 갤러리들이 즐비한 Mitte 지구를 만든 KW(Kunst-Werke Institute for Contemporary Art)는 토론이 가능한지를 전시의 전제로 삼으며 기존의 서사들을 끊임없이 무너트리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자리를 잡아나간다. 건축적 문화재들이 노후, 보존, 복원 등의 핑계로 다른 나라로 반출되면서 물질적 형태뿐만 아니라 그 맥락 또한 파괴되는 것을 탐구해온 Cyprien Gaillard는 2011년 전시에서 또 하나의 페르가몬 재단을 만들었다. 페르가몬 재단은 애초 터키에 놓여있었는데, Cyprien Gaillard는 터키 맥주인 Efes 72,000병을 가져와 KW 전시장에 피라미드를 쌓았다. 관객들은 이 기념물에 올라가 맥주를 마신다. 박물관이 만들어진 과거 시기의 군주식민주의에 오늘날 관광식민주의라는 층을 더해 문화재라는 표피를 움직이는 역사적 맥락과 정치경제적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한 이 전시는 Artforum 2011올해의 전시로 선정되었다. 1840년 첫 박물관에서부터 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상황을 해체하는 방식으로까지 지금의 모습까지, 베를린의 미술공간들은 어찌되었든 서사 쓰기를 계속하고 있다. 


Cyprien Gaillard, <THE RECOVERY OF DISCOVERY>



베를린 국립 박물관 홈페이지

http://www.smb.museum/en/home.html


Cyprien Gaillard, <THE RECOVERY OF DISCOVERY>

http://www.kw-berlin.de/en/exhibitions/cyprien_gaillard_the_recovery_of_discovery_63





Kapitel Zwei Deutschkurs Berlin http://kapitel-zwei.de/

학원 이야기를 할 때 위치 이야기를 뺄 수 없다. Alexanderplatz에 바로 붙어 있다. 그러니까 뮤지엄인젤이나  KW나 Sammlung Boros 등 갤러리가 모여있는 구역까지 걸어서도 갈 수 있다는 말이다. 심지어 학원이 있는 건물은 Berlin을 대표하는 신문사인 Berliner Zeitung가 있는 큰 회사 건물인데 그 중간 4층에 꽤나 괜찮은 갤러리가 있다. Mitte 한가운데 위치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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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r Kugelschreiber

짧은 기록 2016. 3. 18. 18:02




der Kugelschreiber: Kugel 구 schreiben 쓰다

ballpen: ballpoint pen의 약자

볼펜


der Füller : füllen 채우다

fountain pen : 분수 펜

만년필 :  만년만큼 오래 쓰는 펜



볼펜은 원래 그냥 볼펜이라고만 생각했다. Kugelschreiber를 배웠는데 Kugel이 구라는 의미를 갖는다는게 생각났고 그럼 볼펜의 볼도 공을 말하는거겠구나 싶었다. 볼펜은 만년필의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값도 싸고 잉크가 갑자기 번지는 문제도 줄었을뿐만 아니라, 모세관 현상 원리를 이용하기에 수성잉크만 사용가능했던 만년필과 달리 유성잉크도 사용할 수 있었다. 발명연도인 1938년 이후 그래도 잉크가 갑자기 새는 문제도 있고 여전히 비쌌다고 한다. 약 14만원 정도의 가격을 1000원 정도로 내려 볼펜의 보급화를 가져온건 지금 내 책상에 있는 BiC회사라고 한다. 


왜 볼펜인지 생각해보지 못했던건 누군가의 이름처럼 고유한 이름으로만 생각했던 이유도 있지만, 이게 설마 그 공인가를 의심해보지 못했던건 아무리 볼펜을 들여다봐도 굴러가는 공은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정보를 찾고도, 그래서 정말 여기 끝에 공이 있어서 잉크를 묻히며 굴러간다는게 맞나요, 라고 묻고싶다. 


도서관에서 독어 공부하다가 독어 능력 향상과 관련되는건 아니지만 갑자기 생각나는걸 찾아볼 수 있다는게 행복했다. 그리고 내 눈으로 볼 수 없는 볼펜 촉의 사진을 보았는데 고리 달린 행성마냥 반짝 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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