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6.03.2017

짧은 기록 2017. 3. 27. 09:14

1. 좋아진 날씨가 우선인지 다시 삶에 방향을 부여해가는 내가 우선인지는 구분하기 어렵지만 다시 삶에 활기가 돌고 있다. 오늘 일요일에는 정말 오래간만에 조깅을 했다. 카페에 가서 할 일을 할까 했었지만 아침에 일어나 본 밖의 날씨는 조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햇빛이 따사해졌다. 오늘은 섬머타임의 시작이기도 했다. 


2. 엄마와 통화를 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먼저 전화를 걸었다. 엄마가 내게 속상한 일이 있다고 카톡을 보냈었다. 늘 그렇든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엄마는 맞춤법도 문법도 어순도 그 어느 규칙에도 들어맞지 않은 카톡을 보낸다. 여느 때처럼 무시하려 했다. 근데 처음으로 그렇게 넘겨버리려는 내가 보였다. 엄마는 내가 엄마를 무시하는 것에 대해 견딜 수 없어한다. 나는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그건 맞는 말이었다. 난 엄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제대로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엄마를 생각하면 미신적인 이유없는 극도의 불안함과 공포에 사로잡힌 모습이 떠오른다. 규범적 언어와 관념의 소통이 불가능한 사람이라 생각하는걸 알았다. 그런데 엄마는 병원의 직원으로써 가정의 엄마로써 사회가 요구하는 구성원으로서의 삶을 이행해온 사람이었다. 


3. 24금요일엔 도서관에서 할일 하다 알바하고 오늘 26일요일도 마찬가지였다. 25일 토요일에는 늦게 일어나 오랜만에 한식을 만들어 먹고는 (한식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 밥하고 국하고 반찬하고) 오늘이 일주일에 한번 돌아다닐 날이 될꺼라는 직감이 들었다. 저녁 탄뎀 약속 전에 함부르크 반호프 뮤지엄에서 전시를 보고 탄뎀을 만나고 의도치 않게 둘이 같이 Arsenal 포럼까지 일정을 마쳤다. 우습지도 않게 당연하게도 일상에 어느 정도의 리듬이 생겨야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느데 욕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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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017

짧은 기록 2017. 3. 24. 10:46

라면에 맛 들이고 난 이후 매일 라면만 먹다가 오랜만에 샐러드를 해먹었다. 마음에 드는 유투브 플레이리스트를 하나 발견했고 커피도 잘 내려마셨다. 무엇보다 한동안 학교 지원 준비를 위한 글만 읽다가 글다운 글을 읽어 즐거웠다. 오랜만에 편한 마음으로 즐겁게 보낸 하루. 라면이나 샐러드나 만드는데 시간에 큰 차이는 없다. 욕심내고 싶은 즐거움들을 다시 느꼈다. 



HKW

Now is the Time of Monsters

What Comes After Nations?
2017, Mar 23, Thu — 2017, Mar 25, Sat


안토니오 그람시가 붕괴하는 파시즘과 앞으로 가능할 그렇지만 아직은 무엇도 확신할 수 없는 공백의 시기를 이야기할 때 사용한 괴물에서 따온 행사 명칭. 유일한 것으로 보이지만 삐걱거리는 민족-국가 형태를 벗어난 다른 형태의 국가를 상상할 수 있는가. 삼일 간의 컨퍼런스 중 첫 행사여서 그런지 민족국가가 1차세계 대전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해서 창안된 개념일뿐 그것만이 유일하다는 환상을 깨는 사례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1부는 델리 회의를 중심으로한 판아시아 2부는 오스만 제국의 코스모폴리탄적 제국주의. 2부가 흥미로웠다. 오스만제국과 유럽과의 전쟁이 이슬람vs크리스찬 종교전쟁이 아니였다는 사실과 오늘날 이슬람 민족국가주의가 이들에게 공격받고 있는 서구의 발명품이라는 점. 오스만제국은 다양한 종교를 인정하는 다문화 제국을 꿈꿨고, 단일 민족을 기반으로 한 국가 개념은 1차세계대전 이후 윌슨을 중심으로 한 승자의 판에서 발명된 개념이라는 점. 두 강연 모두 결론은 과거 사례가 있으니 우리도 새로운 것을 꿈꿀 수 있다.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과거 역사적 가능성들을 사례로 가져왔더하더라도 안이한 끝이긴 했다. 나머지 강연을 못보는 대신에 발간되는 저널을 읽어보면 컨퍼런스가 괴물의 시기 이후에 대한 상상은 죽어있는 과거의 역사가 아닌 현대의 필요성에서 나온다. 이민자들은 민족 국가 개념으로 인해 살던 곳을 떠났지만 그 어디에서도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오늘날 국가와 정치 시스템은 안과 밖의 경계를 세우는 것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컨퍼런스가 제시하는 문제에 대한 답은 없다. 대신 함부르크 반호프 미술관에서 진행중인 Andria Piper의 전시가 생각났다. 신의를 바탕으로 한 공동체의 설립. 이번 컨퍼렌스의 문제제기도 안드리아 파이프의 구상과 이행도, 모두 국가 체계를 벗어난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Narratives allow us to bring into the present what has been excluded, what has been discarded: “The real must be fictionalized in order to be thought” (Jacques Rancière, The Politics of Aesthe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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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기를 뒤적이다. 2015년 초에 쓴걸 보았다. )

J는 정신이 없고 바쁘고 산만하고 (내가 생각하는) 배려심은 갖추고 있지 못한다. 그리고 어쩌면 나보다 극단적이고 예민하다. 나와 비슷한 성질들이 많다보니 나에게서는 그것들이 약해진다. 아니 그보다는 J도 사람이다. 완벽하게 일처리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J도 쉽게 깨지고 다치는 사람이었다. 

새벽 5시 잠에서 깨었을 때, 부모님이 대화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각자의 시간 중 서로와 공유하는 시간이다. J에게는 이런 시간이 가능할까? 어제의 만남에서 나와 공유한다는 느낌을 받기는 어려웠다. J 말대로 어떤 위험이나 문제가 감지되었을 때, 그제서야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간을 공유했다. 

삶의 태도로 가져왔을 때 우리는 수많은 시간을 생산하기 위해 소비한다. 아니.. 이런 문제로 J를 소급할 수는 없다. J도 우리의 여수에서의 시간처럼 생산에서 벗어나 서로의 사랑만으로 이루어지는 시간을 좋아하며 원한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시지프스의 굴레는 단단하다. J의 작업에 앞서 J의 삶의 태도는 과연 무엇일까? ‚발작’이 존재하지 않는다. 굴레는 굴러간다. 멈추지 않는다. 

J가 인간인 것은, 지극히 일반적인 인간인 것은, 삶의 부재에서 나온자. 잘업과 삶이 불리되지는 않지만 작업 이전의 삶은 어디있는가. 일을 배제한 관계의 부재, 존재의 부재, 성공으로 구분되는 개죽음. 




이름을 부르고 싶은 욕구와 x로 치환하고 싶은 욕구 - J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건 여전히 그와의 관계가 내 삶 일부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타인을 사랑하고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고 정성을 다했다. 실패까지도 나의 시도로 남아있어서 생각을 떨칠수가 없다. 더 나은 선택에 대해 끊임없이 다시 생각한다. 


     그럼에도 나는 다른 사람에게 우리를 설명하지 못한다. 스스로에게도 설명하지 못한다. 아직 정리되지 못했어라는 말로 그저 떠올리는 것만을 반복한다. 아무것도 모르겠어 나는. 그 누구도 탓하고 싶지 않다. 둘다 나쁜 사람으로 남지 않으려는 욕심이 커서 지금까지도 서로를 괴롭히고 있다. 피해자-가해자의 구도는 명확해질 수 없다. 그렇기에 받은 상처와 저지른 잘못이 뒤엉켜서 정확한 답을 내리지 못하게 된다. 할 수 있는 것은 조금 더 우리의 관계를 풀어서 내가 납득할 수 있게 하는 것뿐. 


     그렇게 정리하려 애쓰다 보면 우리의 관계를 설명하는 특정한 말이 어느 한 시기 동안 자리잡게 된다. 지금 내가 J를 더이상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나를 설득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관계에서 감정노동의 짐은 나만이 짊어지었기 때문이다. 항상 그렇듯 J는 내게 특별하면서 동시에 사회에 위치하는 개인이 된다. 일반화시킨다는 두려움이 있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그를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새벽에 서로를 공유하는 대화가 가능하냐는 위의 질문에 나는 여전히 아니라고 단박에 대답했다. 관계를 이어나가려는 군투를 혼자 겪어야했다는게 아직도 허탈함으로 남는다. J도 나름대로 고군분투 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노력이 더 어렵고 복잡해지더라도 같이 풀어나가야 한다는게 J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내가 한 그 시도는 허탈하게 끝났다. 그에게는 감정노동보다 중요한게 있으니까. 내게는 관계가 중요해서 아직까지도 이렇게 쉽게 떠나지 못하고 있다. 


오늘도 J에게서 연락을 받았고 나는 답장하지 않았다. 대신 수없이 머리 속으로 대답했다. 그 중에서 정리할 수 있었던 건. 그렇게 못되게 굴어놓고 나에 대한 좋은 감정이 없어놓고서 어떻게 이렇게 뻔뻔하게 다시 연락할 수 있는지 - 이걸,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뿐이다. 누구나 외로움과 떨어져 살 수 없고 외로움은 그리움과 함께 찾아온다. 서로에게 난사했던 상처가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지만 또 다시 안부를 묻는다. 너/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지만 지금만큼은 나/너를 사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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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pitel Zwei 어학원 글 쓰기 이주차. 지난 글에서 처음 글쓰기 이벤트에 지원했을 때랑 전혀 다른 주제를 썼더니 안된다는 답변을 받았다. 마감되기 전에 지원한다고 편한 주제만 말한 죄값을 치뤄야 한다. 그래서 이번 주제는 베를린 크리스마스 시장. 그래도 정보 전달이라는 목적 없이 편하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두달 전 즈음부터려나, 어딜가나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설탕에 절인 과일껍질, 말린 과일, 견과류와 향신료를 넣고 구운 빵에 하얗디 하얀 슈거파우더를 만들어 만든 케이크 슈톨렌 Stollen부터 시작해서 이 시기에만 볼 수 있는 식료품들로 슈퍼는 가득차고 집집마다 창문엔 크리스마스 조명들이 달리기 시작한다. 그 즈음에서 베를린 곳곳에는 크리스마스 시장이 들어서기 시작한다. 학원가는 길 알렉산더 플라츠 Aexanderplatz에 있는 그곳에 때마다 들어서는 여타 시장들처럼 조잡한 느낌이다. 한국 같으면 시골 축제가 들어선 느낌이라 하나. 베를린 관광지 중심 중 하나라는 명성이 무색할만큼 억지로 흥을 돋구려 하는 처량한 모습이다. 베를린 크리스마스 시장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은 크고 괜찮은 양조장 중 하나인 Kulturbrauerei에서 열리는 시장이라고 한다.


유럽의 크리스마스라 하면 으레 떠올려지는 이미지들이 있다. 크리스마스 마켓. 해가 일찍 져서 어둠이 성급하게 찾아오지만 시장은 온갖 조명들로 빛나고 글루바인으로 온기를 채우는 사람들로 가득한, 따뜻하고 반짝이는 이미지. 거기에 캐롤 음악까지 더불어 어느 하나 빈 곳 없는 꽉찬 상상들. 베를린의 크리스마켓도 그렇겠지.  


 그런데 주변이라해봤자 몇 안되지만, 주위 사람들에게서 크리스마스 시기 베를린에 대해 들은건 하나같이 좋지 않은 인상 뿐이다. 나의 일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학원뿐만 아니라 많은 곳이 2-3주간의 긴 휴가를 갖는다. 대도시이지만 자본주의와는 먼 베를린답게 거리의 상점들은 모두 문을 닫는다. 베를린의 또 다른 매력 또한 크리스마스를 더욱 쓸쓸하게 한다. 이곳은 각지에서 온 사람들로 이루어져있기에 가장 큰 명절 때는 또 그만큼 빠져나간다. 예수의 탄생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베를린은 도통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텅빈 도시가 되다 보니 모두가 떠난다. 


그 시기 베를린 크리스마스 시장은  명절로서의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베를린 사람들이 아닌 외부자들의 공간이 될 것이다. 자신의 자리를 떠난 기회비용을 강박적인 행복으로 잊으려는 여행객들, 함께 시간을 보낼 사람이 없는 사람들, 돌아갈 곳이 없거나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허전함을 아주 잠시 동안 채우는 곳. 








알렉산더 플라츠 크리스마스 마켓 글루바인 상점점. 밝고 흥겨운 가짜 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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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친구들과 수업을 마치고 놀러가서 찍은 사진에는 나를 제외한 열 명이 들어가있다. 아주 큰 숫자는 아니지만 고등학교 때 처음 필름카메라를 산 이후로 한 장에 담긴 가장 많은 사람들일꺼다. 어느 무리건 크고 작은 집단들로 나누어지기 마련이다. 편가르기까지 아니어도 성격이나 관심사 등 무언가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끼리 자연스레 모이게 된다. 지금 같이 수업을 듣는 친구들을 신기할 정도로 모두가 서로에게 아무 제한없이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해 보인다. 국적 나이 문화 지금의 상황 등 모든 것이 다양하고 때로 수업에서 가치관이 부딪히기도 하는데, 같이 수업을 듣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다들 어찌나 챙기는지. 수업이 끝나고 다 같이 집에 가려고 엘레베이터를 붙잡고는 한명한명 이름을 확인하는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 예쁘기까지 하다. 


이런 모습들이 내게는 특히나 고맙다. 아직도 나는 말하는게 어눌해 대화하기 답답할 법도 한데 지치지도 않는지 계속해서 말을 건넨다. 무엇보다는 이 친구들을 통해서 몸의 대화에 익숙해지고 있다. 한국에서 외국작가들과 일할 때 실은 언어보다 악수나 포옹 같은 신체적 접촉이 어려었다. 낯선 사람들과 살이 닿을 때의 이질감은 익숙해지기 힘들었다. 독일에와서도 마찬가지로 악수나 포옹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조금 뒤로 물러나 있었다. 학원에는 스페인어권 사람들이 많은데 가족이나 친구 등 사람에게 정이 많은 이 친구들에게 접촉은 꽤나 중요한 것 같았다. 그렇지만 갑작스레 다가오면 미안하리만큼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그게 몇번 반복되자 내게는 신체적 대화가 어렵다는 걸 이해해주고는 말로만 인사를 건냈다. 이날은 꽤나 오랫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고 그제서야 조금 경계를 풀은 내가 가장 미안했던 친구에게 다가가 살짝 어루만졌더니 처음엔 놀랐다가 이내 웃고는 아주 조금, 더 세게 안아주었다. 기다려준만큼 작지만 보답을 한 기분이었다.





스페인권 친구들 덕분에 지금 내게 가장 매력적인 언어는 스페인어이다. 그 빠른 속도에서 열기 가득한 행동들이 나오려나. 호수가에 자리를 잡고는 몇몇은 수영을 하고 나머지는 쿠바 살사를 비롯한 남미 쪽 춤을 추었다. 스텝은 대학 교양 수업에서 배웠던 것과 얼추 비슷하고 잠시 가르쳐주면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보다는 스텝에 얽매이지 말라고 알려주었다. 짝을 이루어 리드에 맞추어 추면 정말로 배우지도 않은 동작들로 자연스레 파트너와 호흡을 맞출 수 있었다. 짝을 이루지 않고 빙 둘러 각자가 춤을 출 때도 같은 스텝이더라도 그 움직임은 어찌나 다르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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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블로그의 존재를 인식하기 있기도 하고, 조금 여유를 갖으려 하다 보니 공부하다 종종 들었던 생각을 남기려 여기 들어왔다. 


지금 작성하고 있는 문제는 말하기 영역 문제 중 하나인데, 제시된 그래프를 요약하고 그 원인과 이 후의 추세 및 영향을 추론하는 분석하는 문제이다. 그래프는 Leiharbeit는 다룬다. 빌려주다라는 동사 leihen과 노동을 뜻하는 명사 Arbeit가 결합된 단어인데, 실질적으로 계약을 맺는 회사가 노동력이 필요한 타 회사에 노동자들을 빌려주는 최근의 독일 노동시장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조어인 셈이다. 한국에서는 홍익대 청소경비노동자들의 사례를 생각하면 된다. 원청과 직접 계약을 맺지 않기 때문에 원청은 갑작스러운 해고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다. 모범답안을 살펴보니 놀랍게도 모든 원인에 '노동 유연화'라고 부를 수 있는 해석이 없었다. 학원 수업에서도 이 그래프를 분석할 때도 flexibel이라는 단어를 말했을 때 이 수식어가 얼마나 기만적인지 누군가가 반박했었다. 답안에도 고용과 해고가 자유롭지만 그건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일뿐이지 경제적 수익의 효과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늘어나는 Leiharbeit 추세의 영향을 분석할 때는 노동자의 입장이 주로 서술되었는데, 원하는 때에만 일을 할 수 있다는 당사자가 아니기에 생각해낼 수 있는 허구적 이점들은 보이지 않았고 언제든지 해고를 염두해야한다는 삶의 불안정성이 언급되었다. 블로그에 글을 남기고 싶다 생각된 결정적인 부분은 Leiharbeit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없기에 기업의 입장에서 이익이 되고 이들의 몫이 전체 노동시장에서 점차 증가한다는 원인 분석이었다. 


위에 나온 논점들이 물론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게 신문이 아니라 평범한 독일어 시험 문제집에 나는 걸 보고는 이곳에서의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이 어떤지 한국에서 노동문제를 다루는 집회에 갔다 돌아오는 날 보는 포털사이트의 댓글들은 어땠는지 생각해보고는 문제 풀기를 잠시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이 문제집뿐만이 아니라 독어를 공부할 때 언어 자체뿐만 아니라 다루는 내용을 보면서 독일 사람들이 평소 접하는 논제나 그에 대한 입장을 생각해보게 된다. ZDF라는 공영방송 어린이 뉴스를 꽤나 유용하게 볼 때가 있었는데, 일주일에 한번씩은 꼭 LGBT나 특히 난민에 대한 소식을 다루었다. 독일 정부가 펼치는 수용적인 정책과 타국가의 비인도적인 입장을 비교하는건 프로파간다이지만,  그 선전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함께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공존에 대한 강조이다. 독일에 올 때 선진국에 대한 동경은 갖고 있지 않았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약간의 시간이 지난 지금은 이해할 수 없는 모습들도 많다. 다만 어렸을 때부터 혐오와 차별이 잘못된 것이라는 말을 듣고 자란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를 떠올리면 한 세대가 받아온 교육의 축적, 그 교육을 가능하게 한 수세기의 경험으로 생각이 이어져 내가 있던 곳과 지금 있는 자리의 격차가 서글프다. 미디어를 통해 퍼지는 주된 논점들을 단박에 바꾸기 어렵다는게 체념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개별적인 삶에서도 사회적인 삶에서도, 개인적인 경험의 중요성이 자꾸만 생각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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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한동안 소홀히 했지만, 쓰려고 혹은 쓰고 있는 것들은 꽤 있긴 하다. 


- 지난 베를린 갤러리 위크엔드 <미술세계> 단신 및 베를린 갤러리들에 대한 개인적인 단상

- 그 중 재미있게 보았던 전시

- 홍대 일베상

- 식단 등의 근황

- 벤야민 <1900년 경 베를린 유년시절> 번역; 이건 시간 날 때마다 틈틈히 하고 있긴한데 블로그에 올리는 이유는 능력자들의 도움을 받고 싶어서..       09.Juni. 업로드 


여러모로 잘 지내고 있으다. 게으르면서도 바쁜데, 비엔날레 관련해 글을 올리면서 블로그는 좀 더 다듬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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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문이 열리고 닫히면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온도, 냄새, 공간의 높이나 넓이, 습도, 향 벌레 새 물 소리, 공기의 밀도, 식물의 크기, 잎파리의 모양새, 산뜻하거나 질척이거나 메마르거나 등. 밀폐된 하나의 완전한 세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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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

짧은 기록 2016. 4. 8. 07:41

독일로 와서 생각지도 못했던 좋은 걸 하나 꼽자면, 져녁부터 술을 마시고 문득 혹은 항상 연락하고 싶은 사람이 떠올라도, 연락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그 시간 대를 공유할 수 있지만 지금 내가 연락해도 거긴 정신이 가장 멀쩡한 아침이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같은 상념을 공유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연락하기를 포기한다.  연락해서 실망하기 이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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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여행할 때 페이스북에 작성했던 글. 블로그를 네이버에서 검색 가능하도록 설정한 후 가장 먼저 옮기는 글이다. 블로그를 쓰는 이유에는 일단 나 스스로 무언가 기억하는 버릇을 들이고 싶은 것도 있지만,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다. 그게 감정일수도 있고, 정보일 수도 있고. 이 글은 정보성의 글이다. 어떤 사실을 안다는건 그만큼의 책임이 따른다. 그렇지만 무지에서 파생된 폭력들을 멈출 수 있다면, 나의 삶의 정도를 영위하는 선에서는 그렇게 해야만 한다. 



베를린 중심지 중 하나는 알렉산더 광장인데, 여기 근처에 오면 많은 사람들이 Primark 브랜드의 쇼핑백을 들고다닌다. 어떤 곳일까하는 궁금증에 들어가보았더니 사람들이 많이 갈만했다. 가격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저렴했던 것. 예를 들어 나는 목도리 하나를 샀는데 그건 겨우 1유로밖에 하지 않았다. 모두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모든 옷들이 저렴했고 사람들은 큰 자루에 옷을 담고 있었다.

1유로에 목도리를 살 수 있다는건 좋은 일이었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어떻게 이렇게 저렴할 수 있는거지.

당연하게 싼 노동력을 위해 동남아시아 등으로 이전하는 의류회사들을 생각했다. 그러다 숙소에 와서 찾아본 기사는 충격적이었다.

Primark은 스웨덴의 H&M, 스페인의 Zara와 함께 유럽의 대표적인 패스트패션 브랜드 중 하나일 정도로 규모가 크다. 그런데 그 회사의 옷에 도움을 요청하는 메세지가 담긴 쪽지가 들어있거나 문구가 새겨져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 쪽지들에 따르면 중국 감옥의 수감자가 열악한 상황에서 15시간 동안 강제노동을해서 만든게, 바로 우리가 산 그 옷이라는 것이다. 회사는 부인했지만 생산지를 밝히지 못했으며, 심지어 불법 증축한 방글라데시의 프라이마크 하청 공장 ‘라나플라자’가 무너져 노동자 1134명이 사망하고 2438명이 부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했다고 한다.

내가 무얼 샀는지 끔찍했고 허망했다. 그리고 무서웠다. 그저 싼 옷을 찾았던 것처럼 살아가는 매 순간, 거대한 사회 속에서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죽여왔고 해쳐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나를 죽이는 일이기도 하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겠다는 나의 삶의 방식은 너무나도 쉽게 무너질 수 있었다. 
감각할 수 없는 규모로 속도로 작동하는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괴롭지만 진실을 알기 위해 다가가야 하고, 나도 모르게 내가 원하지 않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는 온몸으로 저항해야 한다. 나 자신으로서 살고 싶다. 

(2015.02.03 페이스북 작성)


관련 기사 - 시사저널, <“우린 하루 15시간씩 황소처럼 일한다”> 

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62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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