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들을 정리하고 퇴근할 때, 이제 수요일 즈음 되었구나 하고 달력을 들여다 봤다.
일을 하기로 시작할 때, 이 결정이 어떤 결과로 낳을지 생각을 했었다. 그때의 다이어리를 뒤적거리면 어떤 결정이든지 그 속에서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선택들을 하자는 말이 적혀있을것만 같다. 이 일이 이 생활이 나에게 참 잘 맞는다는 착각, 끝없는 우울함을 지나 지금은 아마도 그럭저럭 살고 있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안간힘을 쓰며 어떻게든 살 길을 찾아보려고 하다가 확언하기는 성급하지만 이제는 적절히 살아가고 있는 정도이다. 쌓여만가는 계약건들을 볼 때마다 내가 왜 일을 하고 있는지 회의감이 든다. 서류더미 속에서 어쩔 줄 몰라하다가 이내 체념한다. 해야 할 일이라는 의무감이 압박감이 되지 않도록 조절해야한다. 점심 저녁을 컴퓨터 앞에서 하고 야근까지 해서 어느 선까지 처리하면 압박감까지는 아니겠구나, 적절히 계산을 해야 한다. 주말이 끝난 주초에는 주말 동안 쌓아두었던 삶에의 의지가 남아있으니 최대한 활용한다. 방전될까봐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이때 처리하지 않아 촉박한 시간들이 다가오면 그건 비난과 자책이 되어간다. 이 정도되면 삶은 바닥나 버린다.
우울한 이야기만 늘어놓은것 같지만 아주 나쁜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상태로 남은 기간만큼 더 살아야 하는 스스로에게 남기는 자기기만일지도 모르지만 나를 잃지 않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일종의 훈련이랄까, 물론 굳이 이런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구렁텅이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훈련할 필요는 없다. 베를린을 여행하던 지난 겨울, 경험의 한계와 감각의 한계를 늘려가고 싶었고 실제로 그렇게 살았다. 지금의 생활도 경험과 감각의 확장의 일부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베를린에서의 생활과는 정반대의 확장이다. 나의 삶의 방식대로 살지 못하는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을 깨우쳐가고 있다. 이 삶을 긍정할 수 있다면, 그건 안티테제로서의 삶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살아보려고는 하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살 수 있는 자리를 만드려는건 다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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