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사진 중 한 장
어떻게든 자신의 필름은 온전히 지켜내겠다는 40여개의 이기심으로 현상 수업은 아비규환이었다. 1학년 수업을 듣는 4학년으로 평정심을 유지하겠다던 나 또한 그 전쟁에 합류해버리고 말았다. 그자체로 패배. 뭐 어찌되었든 역시나 나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기에,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수업시간에 무얼 하려면 안된다. 아직 내가 단단하지 못해서 휩쓸려 가지 않기 위해서는 시간이든 노력이든 더 들여야 한다. 평생이겠지만 어쨌든 마음 편히 살 수는 없다. 나로써 살기위해서는 더 노력해야 한다.
그나저나 첫 현상을 실패이긴 하다. 노이즈가 너무 많고 탁하다해야하나. 그렇지만 인생 사진 한 장을 만들어냈고 무엇보다 처음부터 끝까지 손수 내온 이미지이기에 애착이 간다. 현상은 힘들어도 조금 더 해보고 싶다. 물론 맡기는게 편하지만 노이즈나 화면 상태나 모두 어찌되었던 내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덧붙여 과제마다 자화상이어서 홀로 수업듣는 이로써는 불만족스러웠다. 이미지로 작업하는 진수에게 부탁도 했지만 이전과 달리 이제는 나의 모습을 담고싶어하는 마음이 없구나라는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그려러니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정도였다. 무엇보다는 재미있는 작업을 만들어낼 수 있는 친구들이 지금 내곁에 없다는 것. 소연찡이나 한빈이 생각이 많이 났다. 그런 친구들을 갈구하면서도 일상생활에서는 거리감을 느끼기에 놓아버리는 나도. (이렇게 쓰니까 진수가 나를 놓아버린 이유랑 같구나) 여하간. 아아 자화상 이야기하면서 이런 주절주절 하려는 건 아니었는데, 아무튼 기뻤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까지의 사진이 거의 없는 나였다. 예전엔 찍히는게 마냥 어색했는데 이제는 그런 모습조차 남겨졌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생물학적으로 세포가 죽는다는 늙음도 해당되지만, 싱그러운 세포만큼이나 난 앞으로 마냥 찬란할 수는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나쁜건 아니고 그만큼의 시간들을 겪었던거겠지, 어떻게 보면 지금 시기에는 부당한 경험이라 심술부리고 싶다. 앞으로 마냥 밝을 수만은 없겠구나라는게. 그렇지만 나쁜건 아니고 그냥 뭐 난 어쨌거나 매순간 다른 모습이 되어가고 있으니까 가능하다면 그때의 모습들 남겨두고 싶다.
카메라: 미놀타 X-300
필름: TMAX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