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도 우아하고 가볍게 움직일 수 있다사실을 알지 못했다. 물속에 있을 때면 그 짧고 굵은 다리를 아주 살짝씩 움직여 부드럽게 앞으로 뻗어 나아간다. 귀여운 얼굴로 가만히 있으면 길들임에 대해

이야기할 것만 같은 사막여우는 애완동물로도 기른다고 들었기에, 야행성 동물일 거라 생각해보지 못했다. 하마가 큰 덩치로도 움직일 수 있는 커다란 통유리 수조가 있다면 육중한 몸으로 매끄럽게 헤엄치는 하마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관람객은 다소 불편할지라도 조명은 최소화하여 야행성 동물에게 적합한 공간이 있다면, 사막여우가 야행성 동물이라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 수 있다.


베를린 동물원은 1844년에 처음으로 문을 연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오래된 동물원이다. 베를린 동물원에는 아직도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건물을 본뜬 입구가 있는데, 아프리카와 아시아 그 어딘가 어설프게 이국적인 모양새다. 그러니까 인간의 이성으로 모든 것을 분류하고 파악하려 동물원, 박물관 등을 만들었던 계몽주의나 오리엔탈리즘 등을 배경으로 만들어졌을 테다. 동물원이 있어야 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없어야 답한다. 인간의 이성 체계가 지닌 감각의 한계처럼 동물의 우리는 자연 그대로의 서식지에 비해 한없이 비좁다. 종 다양성 보존을 들먹이기엔 동물원은 엔터테이먼트 장소일 뿐이다. 동물원에서 순기능을 찾아야 한다면 그건 교육적인 목적일 텐데, 한 생명을 배우기엔 동물원은 그들의 세계에서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다. 지금까지 동물원에서의 경험으로는 하나뿐인 기능을 수행하기는커녕, 생명을 하찮게 여길 수 있는 반 교육적인 환경만을 보아왔다.


중고등학교 시절 비뚤어진 마음으로 동물원에 가는 게 연례행사였다. 서울대공원에 있는 히말라야에서 온 설표는 회색빛 좁은 우리에서 혼자 지내며 해가 갈수록 새하얀 털 대신 이끼의 찌든 색으로 뒤덮여갔다. 어린이 대공원에는 오랑우탄 한 마리가 마찬가지로 비좁고 휑한 우리의 혼자 신경질적으로밖에 볼 수 없는 걸음걸이로 왔다 갔다를 반복한다. 갈 때마다 공격적인 모습으로 관람객의 안경이나 핸드폰 등을 낚아채 가더니 언제부턴가 유리 벽으로 바뀌어있었다. 연례행사를 중단한 건 서울대공원 아메리카테이퍼 우리에서였다. 아이들이 테이퍼한테 침을 뱉고 있었다.옆 표지판에는 아메리카테이퍼는 멕시코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동물로, 그들의 조상이 환생했다 믿는다고 적혀 있었다.


한발 물러서 이미 존재하는 동물원을 한순간 없앨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동물들이 그나마 잘 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면서 교육의 기능을 충족시키고 동시에 동물들을 최소한 생명으로서 존중할 수 있도록 구조화하는가의 문제가 남는다.  동물원이 사자가 초원에서 하품하고 사슴이 초원을 뛰노는 ‚순수한 자연’을 보여준다는 환상을 버리고서 말이다. 베를린 동물원 표지판에서 눈에 띄었던 건 그 동물이 죽이는 동물과 죽임을 당하는 동물을 표시해 놓았던 건데, 모든 동물이든 죽임을 당하는 동물에는 사람이 그려져 있다. 마다가스카르에서만 서식하고 그 섬에서 가장 큰 포유동물인 포사에게 해를 입히는 건 사람뿐이다. 그리고 어느 관이든 실내 우리 한 칸은 도마부터 냄비까지 잘 갖춘 부엌으로 꾸며져 있었는데, 조류 관에는 옆에 다른 우리처럼 미세한 철조망이 달린 것처럼 기존의 우리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사람들 동물들이 어떤 음식을 먹는지 지나가며 보거나 사육사가 음식을 준비하는 걸 구경한다. 고기를 큼지막하게 깍뚝깍뚝 썰자 한 아빠는 아이에게 저거 봐 오늘 얘네 굴라쉬를 먹겠구나, 실없게 말했던 것처럼. 여기에 촘촘히 먹이 주기 프로그램 일정을 짜놓는다. „먹이를 주지마십시오. 우리가 이 동물들이 먹어야 할 음식을 제공합니다.“ 표지판 글씨를 아직 읽지 못하는 아이들도 동물들은 자신들의 밥을 먹는다는 걸 아주 쉽게 알 수 있다.


이곳보다 더 좋은 동물원은 많은 것이다. 수마트라오랑우탄이 얽히고설킨 긴 털과 구분할 수 없는 밀집을 지겹도록 느리게 골라내는 걸 지켜보다가 눈이 마주쳤는데, 더는 아무 기대할 것 없다는 그 눈빛이 두려웠다. 이곳을 포함해 어느 동물원이나 그것이 동물원인 이상 완벽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식욕이나 성욕같은 본능 혹은 감정을 따라서 무엇인가 얻으려 갈구할 수 있고 그걸 위해 움직일 수 있는 세계는 동물원 밖에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주어진 동물원이라는 틀에서 오늘은 사막여우가 원래는 어떤 생활을 하는지 체험할 수 있었고, 하마가 갖고 있는 육중한 몸과는 다른 움직임을 보았다. 야행성 동물관과 하마의 집이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지도에 별표쳐져 있던 것도 이런 이유들 때문일 것이다. 동물원을 돌아다니며 겨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물었던 친구의 작업이 떠올랐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대부분은 다르거나 틀리다. 결국 새롭게 알게 되는 것도 그게 맞는건 아닐테다. Paula라는 이름의 하마는 또 다른 습관을 가지고 있겠지. 하마에 대해, 사막여우에 대해, 사람과 동물에 대해 그러니까 무언가를 다르게 볼 수도 있다는 걸 경험으로 이끄는 동물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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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makes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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