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방학 중에 벤야민의 <1900년 경 베를린 유년시절> 번역을 해보려 한다.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남은 시간이 길지는 않기에 전부는 못하겠지만 일단 하루 한 글 씩. 책은 잘 골랐다고 생각한다. 결국은 공동체적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걸 풀어내는건 개인의 서사이기에 어려운 단어는 없다. 글 하나하나가 짧아서 부담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이미 번역본을 한번 읽은 책이라 대체적으로 어떤 맥락인지 이미 아는 상태로 해석을 시도할 수 있다. 처음인 서문은 마지막 문단 빼고는 어려움 없이 할 수 있었다. 물론 단어는 계속 찾아야했고, 단어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표현들은 좀 더 애를 먹어야 했지만.
이 방학이 끝나면 곧바로 B2 시험을 그 다음에는 Test DAF를 봐야 하니, 당분간 이렇게 마음 놓고 텍스트를 읽을 여유는 없을 것 같다. 내가 약한 부분은 듣기이기에 이 부분을 더 신경써야겠지만 문법이나 읽기 공부가 더 재미있다. 무엇보다 좋아하던 사람과 좀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 드는게 좋다. 지금까지 원문으로 읽었던 영어 텍스트들은 한글 번역이 엉망일 때나 (<Art Since 1900>을 필두로 한 이론 텍스트들은 정말...) 번역이 안된 글이었다. 두 경우 모두 이론적인 정보를 파악해내기 위한 글이었다. 반면 <1900년 경 베를린 유년시절>은 똑똑하고 잘 나고 이뻐서 옆에서 동경하며 흐믓하게 쳐다볼 수 밖에 없는 친구의 공책을 읽는 기분이다. 물론 출판사 길의 벤야민 전집은 모두 번역이 잘 되어있지만, 이건 잘 된 번역과는 또다른 문제이다. 좋아하는 마음만큼 그 친구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하나하나 놓치고 싶지 않다랄까. 지금까지 읽은 독일어 텍스트는 모두 어학용 글뿐이었기에 목적 이전의 애정어린 마음으로 글을 대하는건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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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직역 및 문제
번역
외국에 있었던 1932년, 내가 태어난 도시와 오랜 어쩌면 영원한 이별을 해야 할 것이라는게 명확해지기 시작했다.
... (마지막 문장) 감정들을 과거 사건의 우연적인 자전적인 돌이킬 수 없음이 아니라, 과거 사건의 필연적인 공동체적인 돌이킬 수 없음으로 제한하려 시도했다.
- 공통된 단어에 수식이 다를 때, 그리고 그 수식이 길 때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과거 수체례 내적 삶에서 효험이 있던 예방접종을 경험했었다. 그 방법으로 이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치료했다. 유년시절의 상들은 늘 망명지에서의 향수를 가장 강하게 깨우고는 하는데, 나는 목적을 목적을 갖고 이 이미지들을 내면에서 밖으로 불러냈다. 예방접종이 건강한 신체의 주인이 될 수 없는 것처럼, 그리움의 감정이 정신의 주인이 될 수는 없다. 나는 통찰을 통해 감정들을 우연으로 점철된 개인적 이야기가 아니라, 필연적적이고 공동체적인 되돌릴 수 없는 과거 사건들로 제한하려 시도했다.
그 감정은 스스로와 동반하여 가져왔다, 경험의 심연이 아니라 연속성 속에서 두드러지는 자전적 흐름은 이런 시도들 속에서 완전히 물러난다는 것을. 자전적 희름과 더불어, 내 동료들의 내 가족들의 외관도 마찬가지로. 반대로 나는 노력했다, 이미지들을 붙잡기 위해, 그 상들 속에서 대도시의 경험은 시민계급의 아이 속에서 구체화된다.
경험의 심연이 아니라 연속성 속에서 두드러지는 자전적 흐름, 더불어 내 동료나 가족들의 외적 이미지도 감정을 통찰하는 시도 속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대신 나는 시민계급의 한 아이를 통해 구체화되는 대도시의 경험이 담긴 이미지를 붙잡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상들에 각각의 운명이 남겨놓아지는 것이. 상들의 운명은 명확한 형태를 기대하지 않는다. 수세기 전부터 Naturgefühl 속에서 이미지들이 시골에서 보낸 유년시절에 대한 기억에 좌지우지되는 것처럼 (명확한 형태를 기대하지 않는다). 반대로 나의 대도시에서의 유년시절의 이미지들은 아마도 이러한 능력을 갖고 있다. 추후 내부에서 역사적 경험을 수행할 능력. In diesen wenigstens, hoffe ich, ist es wohl zu merken, wie sehr der, von dem hier die Rede ist, später der Geborgenheit entriet, die seiner Kindheit beschieden gewesen war. 나는 바란다, 적어도 그것이 인식할만큼 명백하기를, 지금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이 후에 얼마나 보호 없이 지냈는지, 유년시절이 부여해썼던 보호.
나는 각각의 운명이 이러한 상들에 남겨지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수세기 전부터 자연과의 일체감 속에서 시골에서 보낸 유년시절에 대한 기억들에 좌지우지되는 것처럼, 이러한 상들은 명확한 형태를 기대하지 않는다. 반면 나의 대도시에서의 유년시절의 이미지들은 명확한 이미지를 지닐 수 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적어도, 지금 이야기하는 것들을 감싼 유년시절의 보호망이 그 후에는 얼마나 벗겨졌는지가 명확해졌으면 한다.
06.12.2016 수정(전에는 어쩜 이리 다 틀리게 보았지? 놀랐다. 후에 다시 이 수정본을 볼 때도 그런 생각을 할까.)
나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상들에 각각의 운명이 남겨놓아지는 것이. 상들의 운명은 명확한 형태를 기대하지 않는다. 수세기 전부터 Naturgefühl 속에서 이미지들이 시골에서 보낸 유년시절에 대한 기억에 좌지우지되는 것처럼 (명확한 형태를 기대하지 않는다). 반대로 나의 대도시에서의 유년시절의 이미지들은 아마도 이러한 능력을 갖고 있다. 내부적으로 미래의 공동체적 경험을 미리 형성할 수 있는 능력. 추후 내부에서 역사적 경험을 수행할 능력. 나는 바란다, 적어도 그것이 인식할만큼 명백하기를, 지금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이 후에 의지할 곳이 없어졌음을, 이야기의 유년시절이 태어난 곳에서.
나는 각각의 운명이 이러한 상들에 남겨지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수세기 전부터 자연과의 일체감 속에서 시골에서 보낸 유년시절에 대한 기억들에 좌지우지되는 것처럼, 이러한 상들은 명확한 형태를 기대하지 않는다. 반면 나의 대도시에서의 유년시절의 이미지들은 미래의 공동체적 경험을 구체적으로 예견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이글을 통해서 내가 지금 이야기하는 것들의 유년시절이 지금은 의지할 곳을 잃었다는 사실을 명백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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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작성은 31일에나 해놓고 딴에는 비엔날레 때문에 바빴다고 올려놓지는 않았다. 방학 전 어학 교환하는 친구에게 이번 방학 때 이 책을 읽는 걸 목표로 할꺼야, 라고 말했던걸 그 친구가 기억하고는 방학 후에 다 읽었냐고 물어봤었다. 아니라고 답하면서 스스로 찔려 그 다음날에 바로 글을 올린다.
그때 마지막 문장을 고민하다가 놓아버렸는데, 지금 번역한건 얼추 맞지 않나 생각한다. 벤야민이 유년시절에 느꼈던 감정들이 양가적인 면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그가 유년시절 속에 가지고 있는 이상향은 이 글을 작성한 나치 초지 집권 시절 무너지고 있던 것이었다. 그가 베를린에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것은 단지 나고자란 도시의 지역적인 망명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생각처럼 어쩔 수 없는 지옥인 삶에서, 좀 더 나은 무언가를 상상할 수 있다는건 누구에게나 안식처가 되어준다. 아릿한 이미지와 향 속에서 떠다니는 이상의 행복을 상상하는것도 불가능해진 벤야민은 정신적 안식처 또한 박탈당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