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pitel Zwei 어학원 글 쓰기 이주차. 지난 글에서 처음 글쓰기 이벤트에 지원했을 때랑 전혀 다른 주제를 썼더니 안된다는 답변을 받았다. 마감되기 전에 지원한다고 편한 주제만 말한 죄값을 치뤄야 한다. 그래서 이번 주제는 베를린 크리스마스 시장. 그래도 정보 전달이라는 목적 없이 편하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두달 전 즈음부터려나, 어딜가나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설탕에 절인 과일껍질, 말린 과일, 견과류와 향신료를 넣고 구운 빵에 하얗디 하얀 슈거파우더를 만들어 만든 케이크 슈톨렌 Stollen부터 시작해서 이 시기에만 볼 수 있는 식료품들로 슈퍼는 가득차고 집집마다 창문엔 크리스마스 조명들이 달리기 시작한다. 그 즈음에서 베를린 곳곳에는 크리스마스 시장이 들어서기 시작한다. 학원가는 길 알렉산더 플라츠 Aexanderplatz에 있는 그곳에 때마다 들어서는 여타 시장들처럼 조잡한 느낌이다. 한국 같으면 시골 축제가 들어선 느낌이라 하나. 베를린 관광지 중심 중 하나라는 명성이 무색할만큼 억지로 흥을 돋구려 하는 처량한 모습이다. 베를린 크리스마스 시장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은 크고 괜찮은 양조장 중 하나인 Kulturbrauerei에서 열리는 시장이라고 한다.


유럽의 크리스마스라 하면 으레 떠올려지는 이미지들이 있다. 크리스마스 마켓. 해가 일찍 져서 어둠이 성급하게 찾아오지만 시장은 온갖 조명들로 빛나고 글루바인으로 온기를 채우는 사람들로 가득한, 따뜻하고 반짝이는 이미지. 거기에 캐롤 음악까지 더불어 어느 하나 빈 곳 없는 꽉찬 상상들. 베를린의 크리스마켓도 그렇겠지.  


 그런데 주변이라해봤자 몇 안되지만, 주위 사람들에게서 크리스마스 시기 베를린에 대해 들은건 하나같이 좋지 않은 인상 뿐이다. 나의 일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학원뿐만 아니라 많은 곳이 2-3주간의 긴 휴가를 갖는다. 대도시이지만 자본주의와는 먼 베를린답게 거리의 상점들은 모두 문을 닫는다. 베를린의 또 다른 매력 또한 크리스마스를 더욱 쓸쓸하게 한다. 이곳은 각지에서 온 사람들로 이루어져있기에 가장 큰 명절 때는 또 그만큼 빠져나간다. 예수의 탄생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베를린은 도통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텅빈 도시가 되다 보니 모두가 떠난다. 


그 시기 베를린 크리스마스 시장은  명절로서의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베를린 사람들이 아닌 외부자들의 공간이 될 것이다. 자신의 자리를 떠난 기회비용을 강박적인 행복으로 잊으려는 여행객들, 함께 시간을 보낼 사람이 없는 사람들, 돌아갈 곳이 없거나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허전함을 아주 잠시 동안 채우는 곳. 








알렉산더 플라츠 크리스마스 마켓 글루바인 상점점. 밝고 흥겨운 가짜 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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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친구들과 수업을 마치고 놀러가서 찍은 사진에는 나를 제외한 열 명이 들어가있다. 아주 큰 숫자는 아니지만 고등학교 때 처음 필름카메라를 산 이후로 한 장에 담긴 가장 많은 사람들일꺼다. 어느 무리건 크고 작은 집단들로 나누어지기 마련이다. 편가르기까지 아니어도 성격이나 관심사 등 무언가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끼리 자연스레 모이게 된다. 지금 같이 수업을 듣는 친구들을 신기할 정도로 모두가 서로에게 아무 제한없이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해 보인다. 국적 나이 문화 지금의 상황 등 모든 것이 다양하고 때로 수업에서 가치관이 부딪히기도 하는데, 같이 수업을 듣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다들 어찌나 챙기는지. 수업이 끝나고 다 같이 집에 가려고 엘레베이터를 붙잡고는 한명한명 이름을 확인하는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 예쁘기까지 하다. 


이런 모습들이 내게는 특히나 고맙다. 아직도 나는 말하는게 어눌해 대화하기 답답할 법도 한데 지치지도 않는지 계속해서 말을 건넨다. 무엇보다는 이 친구들을 통해서 몸의 대화에 익숙해지고 있다. 한국에서 외국작가들과 일할 때 실은 언어보다 악수나 포옹 같은 신체적 접촉이 어려었다. 낯선 사람들과 살이 닿을 때의 이질감은 익숙해지기 힘들었다. 독일에와서도 마찬가지로 악수나 포옹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조금 뒤로 물러나 있었다. 학원에는 스페인어권 사람들이 많은데 가족이나 친구 등 사람에게 정이 많은 이 친구들에게 접촉은 꽤나 중요한 것 같았다. 그렇지만 갑작스레 다가오면 미안하리만큼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그게 몇번 반복되자 내게는 신체적 대화가 어렵다는 걸 이해해주고는 말로만 인사를 건냈다. 이날은 꽤나 오랫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고 그제서야 조금 경계를 풀은 내가 가장 미안했던 친구에게 다가가 살짝 어루만졌더니 처음엔 놀랐다가 이내 웃고는 아주 조금, 더 세게 안아주었다. 기다려준만큼 작지만 보답을 한 기분이었다.





스페인권 친구들 덕분에 지금 내게 가장 매력적인 언어는 스페인어이다. 그 빠른 속도에서 열기 가득한 행동들이 나오려나. 호수가에 자리를 잡고는 몇몇은 수영을 하고 나머지는 쿠바 살사를 비롯한 남미 쪽 춤을 추었다. 스텝은 대학 교양 수업에서 배웠던 것과 얼추 비슷하고 잠시 가르쳐주면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보다는 스텝에 얽매이지 말라고 알려주었다. 짝을 이루어 리드에 맞추어 추면 정말로 배우지도 않은 동작들로 자연스레 파트너와 호흡을 맞출 수 있었다. 짝을 이루지 않고 빙 둘러 각자가 춤을 출 때도 같은 스텝이더라도 그 움직임은 어찌나 다르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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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블로그의 존재를 인식하기 있기도 하고, 조금 여유를 갖으려 하다 보니 공부하다 종종 들었던 생각을 남기려 여기 들어왔다. 


지금 작성하고 있는 문제는 말하기 영역 문제 중 하나인데, 제시된 그래프를 요약하고 그 원인과 이 후의 추세 및 영향을 추론하는 분석하는 문제이다. 그래프는 Leiharbeit는 다룬다. 빌려주다라는 동사 leihen과 노동을 뜻하는 명사 Arbeit가 결합된 단어인데, 실질적으로 계약을 맺는 회사가 노동력이 필요한 타 회사에 노동자들을 빌려주는 최근의 독일 노동시장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조어인 셈이다. 한국에서는 홍익대 청소경비노동자들의 사례를 생각하면 된다. 원청과 직접 계약을 맺지 않기 때문에 원청은 갑작스러운 해고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다. 모범답안을 살펴보니 놀랍게도 모든 원인에 '노동 유연화'라고 부를 수 있는 해석이 없었다. 학원 수업에서도 이 그래프를 분석할 때도 flexibel이라는 단어를 말했을 때 이 수식어가 얼마나 기만적인지 누군가가 반박했었다. 답안에도 고용과 해고가 자유롭지만 그건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일뿐이지 경제적 수익의 효과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늘어나는 Leiharbeit 추세의 영향을 분석할 때는 노동자의 입장이 주로 서술되었는데, 원하는 때에만 일을 할 수 있다는 당사자가 아니기에 생각해낼 수 있는 허구적 이점들은 보이지 않았고 언제든지 해고를 염두해야한다는 삶의 불안정성이 언급되었다. 블로그에 글을 남기고 싶다 생각된 결정적인 부분은 Leiharbeit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없기에 기업의 입장에서 이익이 되고 이들의 몫이 전체 노동시장에서 점차 증가한다는 원인 분석이었다. 


위에 나온 논점들이 물론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게 신문이 아니라 평범한 독일어 시험 문제집에 나는 걸 보고는 이곳에서의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이 어떤지 한국에서 노동문제를 다루는 집회에 갔다 돌아오는 날 보는 포털사이트의 댓글들은 어땠는지 생각해보고는 문제 풀기를 잠시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이 문제집뿐만이 아니라 독어를 공부할 때 언어 자체뿐만 아니라 다루는 내용을 보면서 독일 사람들이 평소 접하는 논제나 그에 대한 입장을 생각해보게 된다. ZDF라는 공영방송 어린이 뉴스를 꽤나 유용하게 볼 때가 있었는데, 일주일에 한번씩은 꼭 LGBT나 특히 난민에 대한 소식을 다루었다. 독일 정부가 펼치는 수용적인 정책과 타국가의 비인도적인 입장을 비교하는건 프로파간다이지만,  그 선전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함께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공존에 대한 강조이다. 독일에 올 때 선진국에 대한 동경은 갖고 있지 않았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약간의 시간이 지난 지금은 이해할 수 없는 모습들도 많다. 다만 어렸을 때부터 혐오와 차별이 잘못된 것이라는 말을 듣고 자란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를 떠올리면 한 세대가 받아온 교육의 축적, 그 교육을 가능하게 한 수세기의 경험으로 생각이 이어져 내가 있던 곳과 지금 있는 자리의 격차가 서글프다. 미디어를 통해 퍼지는 주된 논점들을 단박에 바꾸기 어렵다는게 체념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개별적인 삶에서도 사회적인 삶에서도, 개인적인 경험의 중요성이 자꾸만 생각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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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언어를 교환하는 친구와 <위로공단> 상영회에 다녀왔다. 영화를 보는 내내 스크린이 올라가면 친구에게 어떻게 설명해야될까 막막했다. 옛날 한국이 아직 지금처럼 발달되기 이전 7080년대의 이야기에서 끝났다면 과거의 일로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을텐데. 당시 빨간 방의 안보실로 끌려갔던 김진숙 위원장이 크레인 위로 올라갔을 땐, 밀레니엄의 변화를 겪은 시간이 흘렀을 때이자 나의 첫 집회였을 때였다. 그렇지만 그건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경험으로 사회에 축적되어 조선업엔 더 강한 그리고 더 서늘한 바람이 불고있다. 
    시간은 흘러 세상은 변하긴 했다. 노동환경은 먼지 가득한 공장에서 이유없는 모욕 가득한 콜센터로, 할당된 옷감더미는 모니터나 패드 속 업무실적으로, 옷 따라 실려가는 피비린내의 국제적 방향도. 착취는 글로벌화되고 디지털화되었다. 타인의 불행은 포화되어 진부한 이미지로 남아 더이상 개인 혹은 공동체의 서사를 만들지 못한다. 
    그런데도 나는 지난 만남에서 친구에게 강남역사건을 이야기하며 한국 사회가 변했으면 좋겠다고 했었다. 친구는 서툰 독일어로 이야기했던게 오늘 영화를 보고는 이해가 간다고 했다. 한동안 외쳤던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라는 표현은 그 옛날에도 있었더라. 노동이든 성별이든 그 아떤 기준으로도 혐오나 차별의 대상이 되지 않고 불안해하지 않고, 선험적 조건인 사람이라는 사실만으로 서로에게 공감할 수 있다면. 그렇기를 바라고 또 믿는다. 믿는게 있어서 살아갈 수 있다.


(마지막 말은 명백히도 베를린 비엔날레를 염두한 말이다. 미래를 상정하지 않기에 나오는 조롱과 냉소는 웃기지도 않고 힘을 빠지게 한다. 쿨함으로는 불안을 이겨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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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 Read> The Berlin Art Book Fair 2016

10-12.Juni.2016

http://missread.com/


인스타그램 게시물

Sternberg Press의 <Publishing as Artistic Practice> 출간 기념 강연이 있다해서 가보았더니 베를린아트북페어가 열리고 있었다. 앉아있는 판매자들과 이야기 나누는데 친구들과 함께 <부침가루>로 참가했던 작년 UE7이 생각났다. 언리티드에디션의 베를린판, 구태여 설명하자면 전세계판이었다. 
베를린비엔날레 이후로 한국의 모습이 이곳에서 계속 겹친다. 익숙한 미래와 그러 인해 불투명한 현재를 담론이 아닌(HKW 등을 필두로 베를린 미술의 특징은 내게는 진지한 담론 생성이었다, 나중에 말할 기회가 있겠지만 이번 비엔날레에서 기존 베를린과 다소 상이한 느낌을 받는건 뉴욕 베이스의 엄청나게 젊은 콜렉티브 DIS가 큐레이팅을 맡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일단의 드러내기의 방식으로 제시하는 태도와 작품의 형식은 한국 미술계를 상기시킨다. 그곳도 여기도 유토피아적 대안이 불가능하기에 가망없는 무한한 대안이 존재하고 있다. 
다만 이곳에는 레퍼런스가 가득하기에 나로서는 한숨 돌릴 수 있다. <부침가루>를 준비할 때 친구들과 어째서 우리가 공동 프로젝트의 형태로 독립출판이란 매체를 택했고 이것이 예술적 실천이 될 수 있는지, 우리의 컨텐츠와 디자인 나아가 유통방식은 그에 적합한지 고민했던적이 있었다. 오늘 산 이 책에는 60년대 첫 실험부터 포스트디지털 시대 독립출판 및 유통 자체를 재생산하는 지금까지 이야기되어있다. 비엔날레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포스트컨템포러리나 포스트인터넷도 며칠간 구한 텍스트들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어딘가 닮아있는 이 모습들을 친구들과 나누려고 소식들을 물어다 나르고 있다. 지난 갤러리위크엔드 소식은 미술세계 5월호에 단신으로 실었고 이번 비엔날레 소식도 작성 중이다. 그렇지만 사실 지금은 그보다는 친구들이랑 술마시며 한바탕 이야기하고 싶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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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방학 중에 벤야민의 <1900년 경 베를린 유년시절> 번역을 해보려 한다.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남은 시간이 길지는 않기에 전부는 못하겠지만 일단 하루 한 글 씩. 책은 잘 골랐다고 생각한다. 결국은 공동체적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걸 풀어내는건 개인의 서사이기에 어려운 단어는 없다. 글 하나하나가 짧아서 부담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이미 번역본을 한번 읽은 책이라 대체적으로 어떤 맥락인지 이미 아는 상태로 해석을 시도할 수 있다. 처음인 서문은 마지막 문단 빼고는 어려움 없이 할 수 있었다. 물론 단어는 계속 찾아야했고, 단어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표현들은 좀 더 애를 먹어야 했지만. 

이 방학이 끝나면 곧바로 B2 시험을 그 다음에는 Test DAF를 봐야 하니, 당분간 이렇게 마음 놓고 텍스트를 읽을 여유는 없을 것 같다. 내가 약한 부분은 듣기이기에 이 부분을 더 신경써야겠지만 문법이나 읽기 공부가 더 재미있다. 무엇보다 좋아하던 사람과 좀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 드는게 좋다. 지금까지 원문으로 읽었던 영어 텍스트들은 한글 번역이 엉망일 때나 (<Art Since 1900>을 필두로 한 이론 텍스트들은 정말...) 번역이 안된 글이었다. 두 경우 모두 이론적인 정보를 파악해내기 위한 글이었다. 반면 <1900년 경 베를린 유년시절>은 똑똑하고 잘 나고 이뻐서 옆에서 동경하며 흐믓하게 쳐다볼 수 밖에 없는 친구의 공책을 읽는 기분이다. 물론 출판사 길의 벤야민 전집은 모두 번역이 잘 되어있지만, 이건 잘 된 번역과는 또다른 문제이다. 좋아하는 마음만큼 그 친구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하나하나 놓치고 싶지 않다랄까. 지금까지 읽은 독일어 텍스트는 모두 어학용 글뿐이었기에 목적 이전의 애정어린 마음으로 글을 대하는건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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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직역 및 문제

번역



외국에 있었던 1932년, 내가 태어난 도시와 오랜 어쩌면 영원한 이별을 해야 할 것이라는게 명확해지기 시작했다. 



... (마지막 문장) 감정들을 과거 사건의 우연적인 자전적인 돌이킬 수 없음이 아니라, 과거 사건의 필연적인 공동체적인 돌이킬 수 없음으로 제한하려 시도했다. 

- 공통된 단어에 수식이 다를 때, 그리고 그 수식이 길 때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과거 수체례 내적 삶에서 효험이 있던 예방접종을 경험했었다. 그 방법으로 이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치료했다. 유년시절의 상들은 늘 망명지에서의 향수를 가장 강하게 깨우고는 하는데, 나는 목적을 목적을 갖고 이 이미지들을 내면에서 밖으로 불러냈다. 예방접종이 건강한 신체의 주인이 될 수 없는 것처럼, 그리움의 감정이 정신의 주인이 될 수는 없다. 나는 통찰을 통해 감정들을 우연으로 점철된 개인적 이야기가 아니라, 필연적적이고 공동체적인 되돌릴 수 없는 과거 사건들로 제한하려 시도했다. 



그 감정은 스스로와 동반하여 가져왔다, 경험의 심연이 아니라 연속성 속에서 두드러지는 자전적 흐름은 이런 시도들 속에서 완전히 물러난다는 것을. 자전적 희름과 더불어, 내 동료들의 내 가족들의 외관도 마찬가지로. 반대로 나는 노력했다, 이미지들을 붙잡기 위해, 그 상들 속에서 대도시의 경험은 시민계급의 아이 속에서 구체화된다. 


경험의 심연이 아니라 연속성 속에서 두드러지는 자전적 흐름, 더불어 내 동료나 가족들의 외적 이미지도 감정을 통찰하는 시도 속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대신 나는 시민계급의 한 아이를 통해 구체화되는 대도시의 경험이 담긴 이미지를 붙잡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상들에 각각의 운명이 남겨놓아지는 것이. 상들의 운명은 명확한 형태를 기대하지 않는다. 수세기 전부터 Naturgefühl 속에서 이미지들이 시골에서 보낸 유년시절에 대한 기억에 좌지우지되는 것처럼 (명확한 형태를 기대하지 않는다). 반대로 나의 대도시에서의 유년시절의 이미지들은 아마도 이러한 능력을 갖고 있다. 추후 내부에서 역사적 경험을 수행할 능력. In diesen wenigstens, hoffe ich, ist es wohl zu merken, wie sehr der, von dem hier die Rede ist, später der Geborgenheit entriet, die seiner Kindheit beschieden gewesen war. 나는 바란다, 적어도 그것이 인식할만큼 명백하기를, 지금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이 후에 얼마나 보호 없이 지냈는지, 유년시절이 부여해썼던 보호.


나는 각각의 운명이 이러한 상들에 남겨지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수세기 전부터 자연과의 일체감 속에서 시골에서 보낸 유년시절에 대한 기억들에 좌지우지되는 것처럼, 이러한 상들은 명확한 형태를 기대하지 않는다. 반면 나의 대도시에서의 유년시절의 이미지들은 명확한 이미지를 지닐 수 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적어도, 지금 이야기하는 것들을 감싼 유년시절의 보호망이 그 후에는 얼마나 벗겨졌는지가 명확해졌으면 한다. 


06.12.2016 수정(전에는 어쩜 이리 다 틀리게 보았지? 놀랐다. 후에 다시 이 수정본을 볼 때도 그런 생각을 할까.)

나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상들에 각각의 운명이 남겨놓아지는 것이. 상들의 운명은 명확한 형태를 기대하지 않는다. 수세기 전부터 Naturgefühl 속에서 이미지들이 시골에서 보낸 유년시절에 대한 기억에 좌지우지되는 것처럼 (명확한 형태를 기대하지 않는다). 반대로 나의 대도시에서의 유년시절의 이미지들은 아마도 이러한 능력을 갖고 있다. 내부적으로 미래의 공동체적 경험을 미리 형성할 수 있는 능력. 추후 내부에서 역사적 경험을 수행할 능력. 나는 바란다, 적어도 그것이 인식할만큼 명백하기를, 지금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이 후에 의지할 곳이 없어졌음을, 이야기의 유년시절이 태어난 곳에서. 


나는 각각의 운명이 이러한 상들에 남겨지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수세기 전부터 자연과의 일체감 속에서 시골에서 보낸 유년시절에 대한 기억들에 좌지우지되는 것처럼, 이러한 상들은 명확한 형태를 기대하지 않는다. 반면 나의 대도시에서의 유년시절의 이미지들은 미래의 공동체적 경험을 구체적으로 예견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이글을 통해서 내가 지금 이야기하는 것들의 유년시절이 지금은 의지할 곳을 잃었다는 사실을 명백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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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작성은 31일에나 해놓고 딴에는 비엔날레 때문에 바빴다고 올려놓지는 않았다. 방학 전 어학 교환하는 친구에게 이번 방학 때 이 책을 읽는 걸 목표로 할꺼야, 라고 말했던걸 그 친구가 기억하고는 방학 후에 다 읽었냐고 물어봤었다. 아니라고 답하면서 스스로 찔려 그 다음날에 바로 글을 올린다. 

그때 마지막 문장을 고민하다가 놓아버렸는데, 지금 번역한건 얼추 맞지 않나 생각한다. 벤야민이 유년시절에 느꼈던 감정들이 양가적인 면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그가 유년시절 속에 가지고 있는 이상향은 이 글을 작성한 나치 초지 집권 시절 무너지고 있던 것이었다. 그가 베를린에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것은 단지 나고자란 도시의 지역적인 망명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생각처럼 어쩔 수 없는 지옥인 삶에서, 좀 더 나은 무언가를 상상할 수 있다는건 누구에게나 안식처가 되어준다. 아릿한 이미지와 향 속에서 떠다니는 이상의 행복을 상상하는것도 불가능해진 벤야민은 정신적 안식처 또한 박탈당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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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한동안 소홀히 했지만, 쓰려고 혹은 쓰고 있는 것들은 꽤 있긴 하다. 


- 지난 베를린 갤러리 위크엔드 <미술세계> 단신 및 베를린 갤러리들에 대한 개인적인 단상

- 그 중 재미있게 보았던 전시

- 홍대 일베상

- 식단 등의 근황

- 벤야민 <1900년 경 베를린 유년시절> 번역; 이건 시간 날 때마다 틈틈히 하고 있긴한데 블로그에 올리는 이유는 능력자들의 도움을 받고 싶어서..       09.Juni. 업로드 


여러모로 잘 지내고 있으다. 게으르면서도 바쁜데, 비엔날레 관련해 글을 올리면서 블로그는 좀 더 다듬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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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문이 열리고 닫히면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온도, 냄새, 공간의 높이나 넓이, 습도, 향 벌레 새 물 소리, 공기의 밀도, 식물의 크기, 잎파리의 모양새, 산뜻하거나 질척이거나 메마르거나 등. 밀폐된 하나의 완전한 세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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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4.2016

음식물 2016. 4. 15. 17:08

더이상 전처럼 순간 나에게 최적인 것을 찾으려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그 날의 섭취물은 내가 어떻게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그걸 사진으로 찍으면 너무나도 쉽게 당시의 상황과 감정이 남겨진다. 핸드폰이 망가져 없이 살다가 유심칩도 없으면서 결국 새 핸드폰을 산 것도 그때문이다. 먹는 행위 없이 사는게 불가능하기에 때로는 잘 챙겨먹고 싶으면서도 삶이 내가 관여할 수 없는 물리적인 반복으로만 유지된다는게 때로는 견딜 수 없다. 장을 보러 슈퍼에 가는 불필요성보다 하루 한끼 요리해먹는 최소한의 강박에 대한 지겨움이 더 커져서 아침부터 오랜만에 빵을 사와 아침 점심 그것만 먹은 날이었다. 그러다 갑작스러운 약속으로 모두가 하나씩 정성들인 저녁을 먹게 되었다. 그만큼 많이 웃으며 밤 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타당한 요리, 식사 그리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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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

짧은 기록 2016. 4. 8. 07:41

독일로 와서 생각지도 못했던 좋은 걸 하나 꼽자면, 져녁부터 술을 마시고 문득 혹은 항상 연락하고 싶은 사람이 떠올라도, 연락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그 시간 대를 공유할 수 있지만 지금 내가 연락해도 거긴 정신이 가장 멀쩡한 아침이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같은 상념을 공유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연락하기를 포기한다.  연락해서 실망하기 이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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