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샤 발츠의 <Twenty to Eight>을 보고 글을 쓰다가 왜 (언어가 없는) 무용이라는 사실 자체만으로 벅찰 수 밖에 없었는지 이야기하려다 앞부분이 너무 길어졌다. 공연 감상이라고 하기엔 부적절하지만 아직은 공연 보는게 이렇다,라는 정도의 글은 되겠다 싶어서 그냥 따로 적었다. 감독이나 작품 혹은 공간에 대한 정보는 담지 않았다.
베를린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본 공연은 Christoph Marthaler 크리스토퍼 마탈러의 <Hallelujah>였다. 광주 예술극장 아워 마스터즈 시즌 중 마털러의 작품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베를린으로 와버려 보지 못하게 된 아쉬움이 있었던 참에 Volksbühne 베를린 민중극장에서 프리미어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예매했었다. Volksbühne는 지난 여행에 이은 두 번째 방문이었다. 사실 그때 누구의 어떤 작품을 보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숙소 앞에 큰 극장이 있었는데 그게 Volksbühne였고 베를린에서 괜찮은 극장 중 하나라는 어렴풋하게 들었던게 생각나 바로 가서 공연을 보았었다. 8시 공연이었는데 끝나고 나오니 12시가 넘었었다. 처음부터 관객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끝날 때 즈음에는 10줄 안팎의 사람들이 무대 앞쪽에 옹기종기 남았었다. 작품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회전 식의 무대나 무대 중앙에 설치된 수로 등 무대 장치를 어떻게 이용하는지나, 무대 위에 실시간으로 카메라맨들이 등장하고 그 이미지가 무대 한편 스크린에 영사되는 방식의 비디오라는 매체를 사용하는 방식들을 주로 보았다. 이런 매체의 전면적인 쓰임은 이제는 한국에서 실험이라 부르기 무색하게 흔한 방식이 되었기에 약간은 공부하는 마음으로 관찰했다. 내용도 이해할 수 없고 시간이 지나도 끝나지 않는 공연장에 끝까지 앉아있었던 건, 4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배우도 작품도 나도 고통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지난함 속에서 서로의 현존을 확인하며 자리를 지켰다. 이번에 본 <Hallelujah>에도 자막이 없었고,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마탈러에 갖고 있는 막연한 이미지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그의 작품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건 스틸컷을 보았을 때 마치 에드워드 호퍼의 회화 작업에서 볼 수 있는 납작하게 눌린 무게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는데, 공연은 스틸컷에서 내가 느꼈던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조명과 무대미술이 만드는 정돈된 색감, 기본적인 연극의 구조는 갖추었지만 극적 전개 없이 대부분 노래로 흘러가는 구성, 특징적인 관계망 없는 인물들 - 이런 것들로 인해 <Hallelujah>는 특정 시공간 속 입체적인 사건이 압축된 평면으로 드러났었다. 마탈러의 작품 전반을 흩어보았을 때 빠지지 않는 유머러스함을 여전히 지니면서 말이다. 감이나 알고 있던 사실을 직접 확인하는 즐거움은 있었지만, 사실 작품에 충분히 집중할 수 는 없었다. 이전의 여행자의 마음과는 달리 삶의 자리를 옮긴 이번에는 작업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견디기 힘들었다. 외국에서 혹은 외국어로 진행되는 공연은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게 되었고, 경험했다는 것 자체로 만족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공연예술을 공부하겠다 왔건만 작품에서 이질감은 어느정도 비참하긴 했다. 아직은 당연한 일이긴 하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집에 돌아와 자질구질한 올해 목표 100가지 목록에 ‚독일어로 된 공연 이해하기’라는 한 줄을 하나 더 적는 정도. 그때는 제대로 된 감상 글도 남기고 싶다.
<Tessa Blomstedt gibt nicht auf>
최근 광주 아시아예술극장에서 재공연한 작품. 이 스틸컷 하나로 감독의 정보를 찾기 시작했었다.
<Hallelujah>
사진 출처 Volksbüh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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