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도 느꼈듯이 <Dido & Aeneas>는 수업시간 동안 감상했던 작품들과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그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먼저 발레와의 유사점이다. 안무에서는 공간 전체가 아니라 정면성만을 염두한 움직임들이 있었고, 군무들은 발레가 추구했던 균형 잡힌 대칭을 맞추었다. 발레처럼 공연을 위해 만들어진 음악이 아니라 오페라로 만들어진 음악이기는 했지만, 안무의 카운트와 음악과 딱딱 맞아떨dj졌다. 이런 점들에서는 가능성의 여지보다는 발레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질서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작업들과 <Dido & Aeneas>에서 느끼는 이질감은 이 작품과 발레와의 유사점뿐만 아니라 모던댄스와의 유사점에서도 보였다. 아름다움을 위한 발레에 저항했던 모던댄스에서 춤은 기교가 아니라 신체의 표현수단이었다. <Dido & Aeneas>는 발레와 닮은 면이 있지만 동시에 이에 발레의 아름다움과는 맞지 않고 오히려 강인한 힘을 담은 동작, 중력의 현시 등이 있어서 모던댄스라는 측면이 눈에 띄었다. 올곧고 부드러운 자세뿐만 아니라 팔을 굽히는 등 몸을 왜곡하는 자세들이 있었다. 또한 지면을 전면적으로 사용하거나 강하게 뛰어내리며 중력을 보여주고 들려주는 안무들도 많았다. 


     이 작품이 다른 작품들과 다르게 보였던 가장 큰 지점은 오늘날의 많은 작업들처럼 신체성을 나타내느냐였다. <Körper>는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육체’를 주제로 삼았고 안무들은 모두 무대 위 현존하는 육체를 탐구했다. <Enter Achilles>와 <The metamorphosis>는 스토리가 있기는 하지만, 안무들이 스토리 전달에 목적이 있기보다는 신체성 그 자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Enter Achilles>에서는 신체의 접촉면이 빚어내는 동작이 눈에 띄었고, <The metamorphosis>에서는 무용수 한 명의 모든 근육이 인간 실존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었다. 동시에 작품이 고민하는 바가 신체성을 탐구하는 안무와 멀리 있지 않았다. 남성성에 대한 고민은 안무가 보여주는 강한 충돌 혹은 그와 대비되는 접촉에서 나타났고, 인간 실존에 대한 고민은 기괴하게 비트는 근육에서부터 스며 나왔다. 


     반면 이번 작품 <Dido & Aeneas>의 무용에서는 신체성이 우선되기보다는 표현수단에 머물렀다는 느낌을 받았다. 모든 동작이 의미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가장 눈에 띄게는 마임이 많았다. 영웅, 아름다움, 운명 등 주인공이나 스토리에서 중요한 키워드로 자리 잡는 개념들이 모두 마임으로 표현되었기에 그만큼 작품에서 많이 등장했다. 마임뿐만 아니라 출항을 준비하는 동작 등 의미와 연결되는 동작들도 많았다. 의미를 직접적으로 나타내는데 치중하는 이런 동작들로 인해 신체성이 만들어내는 흐름이 자주 끊겼고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 입장에서는 동작에서 뜻을 읽으려는 노력이 내체화되었다. 그만큼 동작들은 모두 의미를 담고 있고 이 의미는 내용상 뿐만 아니라 감정 또한 품고 있었다. 극의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들을 물론 노래의 선율과 가사가 알려주기도 했지만, 안무만 보더라도 충분히 느껴질 수 있는 사랑 앞에서의 망설임, 환희, 슬픔 등이 느껴지는 움직임이었다. 표정까지 감정을 표출하고 있어서 극이 갖는 연극적인 면모가 <Dido & Aeneas>에서는 강하게 드러났다. 

     형식과 의미 전달 상의 여지 없음은 신화에서 오페라로, 오페라에서 무용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이 변화의 흐름에 충실하려 했던 결과로 보인다. 기본적으로는 신화부터 시작된 스토리를 우선으로 하여 이를 온전하게 담아내고 있다. 직접 성악가들을 작품에 등장시킨 만큼 강조되었던 음악의 측면에서 보면 안무의 카운트는 이 음악을 따르고 있었다. 음악은 박자를 지시하는 역할에서 나아가 안무의 의미를 지시했다. 선율과 가사에서 느껴지는 상황과 감정이 그대로 음악에 동반하는 안무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렇듯 <Dido & Aeneas>에서 신화 스토리와 오페라가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는 사실에서 이 작품이 상황에서 느낄 수 있는 정서 전달을 추구했다는 사실을 유추해볼 수 있다. 오페라는 목소리가 표현할 수 있는 최대한의 능력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스토리를 쉽게 알려주면서 여기서 느낄 수 있는 정서를 극대화시킨다. 물론 정서 전달에는 안무 또한 큰 역할을 했다. 여성 역할을 맡은 남성 안무가 Mark Morris는 강인한 움직임 속 절제된 표현으로 운명을 받아들이는 Dido의 감정을 유려하게 전달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아주 확실하게 여지를 열어둔 지점이 있었다. 이 지점은 오히려 앞서 살펴본 <Dido & Aeneas>가 지닌 견고함을 흔들어놓는다. 그건 바로 이야기의 태초부터 여성으로 설정된 Dido의 역할을 남성 무용수인 Mark Morris가 맡는다는 사실이다. 이는 상황과 감정으로의 몰입에서 관객들을 떼어놓는다. 관객들이 극적으로 빠져들게 되는 성행위나 자위 장면에서 성별의 교란은 관객이 작품에서 물러나게 한다. 작품 전체는 이처럼 관객들을 고정시키면서도 흔들어놓는 애매함이 나타나는데, 이는 주인공에서 성별의 혼돈에 국한하는 것은 아니다. Mark Morris는 여주인공뿐만 아니라 그녀를 고통으로 떠미는 악한 마녀의 역할도 담당한다. 그녀의 역할 변경과 함께 다른 안무가들의 역할도 선과 악을 뛰어넘는다. 심지어 의상마저도 치마와 바지로 그 역할을 오고간다. 이렇듯 전반적으로 <Dido & Aeneas>는 규정지을 수 없는 정체성들을 무대 위에 뛰어놓는다. 


     부유하는 정체성의 레이어들을 살펴보자. 먼저 여주인공을 남성 무용수가 추는데 그는 동시에 여성 무용수와 적대되는 또다른 여성을 맡는다. 이 두 여성은 작품에서 여러 방식으로 대비되어 표현된다. 가장 쉬운 구조로 이 둘에게는 각각 두 명의 심복이 있어서 관객들은 이 대비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안무에서도 대비는 나타나는데 Dido 역할을 할 때는 주로 서있는 동작이 많은 반면, 여자 마법사 역할을 할 때는 지면을 주로 사용하는 것이 눈에 띈다. 또다른 차이점은 감정의 표현이었다. 무엇보다도 마법사일 때는 성적인 분위기로 흘러넘치며 경박스러울 정도로 감정 표현이 직접적이다. 이는 얼굴표정에서도 드러나지만 안무에서도 드러나는데 마녀 캐릭터일 때는 정신없이 돈다든지 팔다리를 매우 빠르게 움직인다. 그렇다면 비극적인 사랑의 운명에 빠진 여왕 Dido의 감정표현을 어떨까. 그녀의 감정은 마녀의 흘러넘치는 감정표현과 대비되어 절제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극 중 Dido는 사랑하는 Aeneas가 떠난다는 사실에 죽을 만큼 슬퍼하면서도 그가 내린 결정을 그보다도 더 확고하게 수행한다. 흔들린 Aeneas가 그녀를 찾지만 되돌리는 몸짓에서 Dido는 손을 부드럽게 뻗으면서도 그 속에는 단호함이 담겨있다. 그녀의 안무의 선에는 확신으로 가득찬 힘이 들어가 있다. 하지만 강인함이 곧 감정의 메마름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Mark Morris가 보여주는 선에는 확고한 슬픔이 들어가 있기에, Dido가 이미 빠져버려 되돌릴 수 없는 사랑의 비극과 그녀의 결연함이 보는 사람에게 깊게 박힌다. 이러한 감정표현의 차이는 두러 인물의 캐릭터와도 관련 있다. 여자 마법사는 다른 사람의 슬픔을 자신의 즐거움으로 소비하는데 이는 마스터베이션에서 느끼는 휘발성의 쾌락일 뿐이다. 반면 Dido는 한 나라를 다스리는 현명한 군주이자 자신을 휩싸는 사랑의 감정에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인물이다. 


     Dido를 남자 주인공 Aeneas와 비교하여 살펴보면 그야말로 자신의 감정에 확신하지 못하고 휘둘리는 인물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비극적이며 누구에게나 슬픔으로 다가온다. <Dido & Aeneas>에서는 흔히 이성적 판단을 내리는 성별로 알려진 남성이 갈팡질팡하는 반면 감성적인 유약한 존재로 여겨지는 여성이 슬픔마저도 포괄하는 흔들림 없는 결단을 보여준다. Dido와 Aeneas 사이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성역할과 다른 면모는 무용가의 외적 형상에서 그리고 그 안무에서도 드러난다. 먼저 Aeneas보다 Dido의 체격이 크기 때문에 남성이 여성을 감싸고 보호하는 모습을 기대할 수는 없다. 동작에서도 마찬가지이다. Dido는 동작 하나하나에는 몸 끝까지 힘이 담겨 있다. 


     여주인공 역할을 맡은 육중한 몸의 남자 무용수가 낯설게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애초의 이 신화는 규정된 기준을 넘나드는 인물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Mark Morris가 Dido 역을 맡은 것은 그 넘나듦을 한 번 더 뒤집어서 보여준 것뿐이다. 이런 식의 정체성의 끊임없는 반전은 선한 인물들과 악한 인물들 즉 선악의 이분법을 뛰어넘는 역할 부여에서도 보인다. 신화 속 Dido에게 <Dido & Aeneas> 속 Mark Morris에게, 이미 정해진 것이란 없다. 이분법 체계 속에서 부여된 성격, 역할 등 모든 것을 두 인물은 서사를 통해서 몸짓을 통해 뒤집어가며 보여준다. 이 점에서 <Dido & Aeneas>가 그토록 충실하게 여지를 닫아놓으려 했던 시도는 오히려 가능성을 극도로 확대하려는 시도일지도 모른다. 견고하게 쌓여있는 것이 실은 균열로 이루어져있음을 알게 될 때 그 허상은 무너질 수 있게 된다.  








신체성이 드러나는 무용아니면 별 흥미를 갖지 않았었다. 더군다나 스토리 전달이 위주인 작품들에는 무용일는 장르와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Dido & Aeneas>를 보면 무언가 전달하는 움직임 그 자체, 그러니까 의미를 포함한 움직임지라도 깊은 곳까지 엄습하는 사로잡힘이 있었다. 특히 남성의 강한 신체가 감정을 전달할 때, 그 감정은 강인하지만 그렇기에 더 사무친다는 것을 Mark Morris의 몸에서 볼 수 있었다. 

' 극 중 Dido는 사랑하는 Aeneas가 떠난다는 사실에 죽을 만큼 슬퍼하면서도 그가 내린 결정을 그보다도 더 확고하게 수행한다. 흔들린 Aeneas를 되돌리는 몸짓에서 Dido는 손을 부드럽게 뻗으면서도 그 속에는 단호함이 담겨있다. 그녀의 안무 선에는 확신으로 가득찬 힘이 들어가 있다. 하지만 강인함이 곧 감정의 메마름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Mark Morris가 보여주는 선에는 확고한 슬픔이 들어가 있기에, Dido가 이미 빠져버려 되돌릴 수 없는 사랑의 비극과 그녀의 결연함이 보는 사람에게 깊게 박힌다.'

의도치도 않은 성격의 작품에서 이번 학기 중 가장 좋아하는 안무가가 나온 것 같다. 나이를 먹은 후 인터뷰를 보는데 호방함에서 여유가 느껴진다. 젊을 때 사진에서는 눈에서 느껴지는 애수에도 빠져들었다. 허허 이 아저씨 참. 

Posted by wmakes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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