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V8 Physical Theatre, <Enter Achilles>
‘쟁기’라는 가게 이름, 펍, 축구공 등 <Enter Achilles>는 남성을 상징하는 것들로 가득차있다. 등장하는 무용수들도 모두 남성들이다. 남성성을 떠올릴때는 흔히 그 대척점으로 여성성이 수반된다. 이 이분법은 중심과 주변부의 구분으로도 이어진다. 남성이 갖고 있는 특징들이 공동체 내에서 이상적으로 여겨지면서 남성성이 기준이 되고 이와 반대되는 여성성은 변두리로 물러나는 것이다. 그렇기에 남성성을 떠올릴 때 그 내부를 들여다보기는 어렵다. 여성성과의 구분을 바탕으로 생겨났기에 구분점을 만드는 대표성이 먼저 나타나기 때문이다. 배경에 남성성으로 가득찬 <Enter Achilles>은 여성성과 남성성간의 대표성 싸움을 떠나 남성사회를 제시한다. 그 속에서 막연하게 기준으로만 여겨지던 남성성의 모습이 어떤지 살펴볼 수도 있고 그 애매모함을 목격하기도 한다.
가장 눈에 들어오는 남성들의 문화는 놀이와 폭력의 혼종이다. 신체 간의 강렬한 부딪침은 곧 놀이이다. 압박적인 신체 접촉이 감정 싸움으로 번지다가도 이내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웃는다. 물리적 폭력만이 아니다. 정신적 폭력 또한 마찬가지이다. 어느 한 사람이 놀림을 당하기도 하지만 하나의 놀이이기에 이내 곧 피해자와 가해자는 순환된다. 이러한 폭력에 때로는 악의도 있지만 <Enter Achilles>가 보여주는 남성사회에는 폭력이 악의 이전에 놀이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는 강인함도 중요하다. 강인한 신체와 마음으로 공동체원들의 압박을 상처로 받아들이지 않아야 한다. 이런 분위기를 바탕으로 좀 더 강안한 사람이 우두머리가 된다.
이렇듯 <Enter Achilles>의 배경에는 남성성이 가득차있다. 그런데 여기 제목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치명적인 약점요소들이 들어온다. 약점요소가 되는 것은 강인하고 그렇기에 규범이 되어온 남성성과는 거리가 있는 어떤 것들이다. 슈퍼맨 복장의 남자가 들어오면서 강인한 남성 사회에 금이 가기 시작하지만 이미 균열은 있었다.
작업 초반에 꽃무늬 셔츠 차림의 남자는 혼자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빨강 색 셔츠를 입은 남자는 슈퍼맨이 들어와 처음 괴롭힘에 동참하지 않았다. 균열은 보스에게서도 보인다. 보스는 남성성을 바탕으로 견구하게 구축된 정상과는 거리가 있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인간으로서의 여성을 탐하는 것이 아니라 섹스돌과 사랑을 나눈다. 그것도 욕정의 아니라 애정의 상대로. 눈에 보이는 균열이 다가 아닐 것이다. 앞서 말한 놀이와 폭력의 혼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부딪치는게 정말 세서 아플 수도 있고 나를 지나친 인사가 기억에 남을 수도 있고 놀림이 상처로 남을 수도 있다. 펍의 인물들은 모두 쿨하게 넘어간다. 그러나 정말 모두가 괜찮았을까,
펍의 인물들만이 모순적인 것은 아니다. 슈퍼맨 복장을 남자 또한 갖은 모호함으로 가득차있다. 자신들을 괴롭히는 남성들에게 분노를 갖으면서도 끊임없이 그 무리에 드어가고 싶어한다. 정의와 힘의 상징인 슈퍼맨 복장을 입으며 영웅 히어로를 흉내내면서도 악행을 묵인하며 직접 범하기도 하다. 그가 받은 분노는 애꿎은 축구에게만 꽂힌다.
<Enter Achilles>는 남성성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남성성의 표상에 균열을 가한다. 남성성은 결코 단일한 것이 아니다. 집단으로서만 유희하는 펍의 남자들과 달리 슈퍼맨은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법을 아는데, 이러한 그가 깨는 지점은 남성성보다는 단일함이다. 단일함이 깨진다면 아킬레스건은 더이상 약점이 아닐 수도 있다. 모두가 공유하는 지점이 아니라 개인의 공격지점으로 본다면 아킬레스건은 약점이 된다. 그러나 모든 존재를 개별자로본다면 아킬레스건은 누구나 갖고 있는 개별성이 될 수 있다.
상처받는 보스만 남기고 모두가 떠나는 장면으로 서사가 마무리되는 <Enter Achilles>는 상처주는 자는 상처받는 자를 이해할 수 없다는 슬픈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양자를 구별할 수 없으며 모두가 상처주는 자라는 회의적인 이야기로 볼 수도 있겠지만, 각자의 개별성과 함께 할 수 있는 여지는 남겨 있다. 무용이라는 장르와 <Enter Achilles>가 택한 접촉 방식의 안무는 하나의 방안이 된다. 직접적인 신체성을 바탕으로 하는 무용은 대표성을 지닌 재현이 아니라 수행을 특징으로 한다. 그렇기에 <Enter Achilles>의 남성성은 하나의 고정된 규범으로 자리잡는 것이 아니라 그 고정을 흐트리고 뒤섞었다. 접촉을 바탕으로 하는 안무는 흐트러지는 상황 속에서 존재들과 함께할 수 있는 방법과 태도를 알려준다. 접촉은 혼자서는 가능하지 않다. 컵같은 사물일수도 있고 인물일수도 있고 어떤 대상의 다양한 면들을 경험하고 이해해야지만 몸짓이 가능하다. 인간은 인간이기에 완벽하지 않고 계속해서 변화해간다. 그럼에도 관계 맺을 수 있는 방식은 접촉 안무와도 비슷하다. 변화해가는 모습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 신체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관계의 과정에서도 변화는 가능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안무는 슈퍼맨이 펍으로 두 번째 들어왔을 때 당하던 폭력을 마치 쎄쎄쎄 등과 같이 함께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유하는 몸짓이었다. <Enter Achilles>는 남성성을 다루지만 그 속에 혼합된 모습은 남여 모두에게 해당된다. 이 작업에서는 차이를 기반으로 한 관계가 불가능에서 가능으로 바뀔 수 있음을 볼 수 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5PFR2OXf9iQ
'공연,영화,전시, 행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디언밥 기고) 김동희, <나열된 계층의 집> (0) | 2016.04.03 |
---|---|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 <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강산무진> (0) | 2015.09.29 |
(무용미학 주별레포트) Mark Morris, <Dido & Aeneas>(1989) (0) | 2015.06.12 |
(무용미학 주별레포트3) Arthur Pita, <The metamorphosis> (0) | 2015.06.05 |
(무용미학 주별레포트2) Sasha Waltz, <Körper> (0) | 2015.06.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