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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공단> 베를린 상영회
wmakesn
2016. 6. 17. 08:38
서로의 언어를 교환하는 친구와 <위로공단> 상영회에 다녀왔다. 영화를 보는 내내 스크린이 올라가면 친구에게 어떻게 설명해야될까 막막했다. 옛날 한국이 아직 지금처럼 발달되기 이전 7080년대의 이야기에서 끝났다면 과거의 일로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을텐데. 당시 빨간 방의 안보실로 끌려갔던 김진숙 위원장이 크레인 위로 올라갔을 땐, 밀레니엄의 변화를 겪은 시간이 흘렀을 때이자 나의 첫 집회였을 때였다. 그렇지만 그건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경험으로 사회에 축적되어 조선업엔 더 강한 그리고 더 서늘한 바람이 불고있다.
시간은 흘러 세상은 변하긴 했다. 노동환경은 먼지 가득한 공장에서 이유없는 모욕 가득한 콜센터로, 할당된 옷감더미는 모니터나 패드 속 업무실적으로, 옷 따라 실려가는 피비린내의 국제적 방향도. 착취는 글로벌화되고 디지털화되었다. 타인의 불행은 포화되어 진부한 이미지로 남아 더이상 개인 혹은 공동체의 서사를 만들지 못한다.
그런데도 나는 지난 만남에서 친구에게 강남역사건을 이야기하며 한국 사회가 변했으면 좋겠다고 했었다. 친구는 서툰 독일어로 이야기했던게 오늘 영화를 보고는 이해가 간다고 했다. 한동안 외쳤던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라는 표현은 그 옛날에도 있었더라. 노동이든 성별이든 그 아떤 기준으로도 혐오나 차별의 대상이 되지 않고 불안해하지 않고, 선험적 조건인 사람이라는 사실만으로 서로에게 공감할 수 있다면. 그렇기를 바라고 또 믿는다. 믿는게 있어서 살아갈 수 있다.
(마지막 말은 명백히도 베를린 비엔날레를 염두한 말이다. 미래를 상정하지 않기에 나오는 조롱과 냉소는 웃기지도 않고 힘을 빠지게 한다. 쿨함으로는 불안을 이겨낼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