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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올리겠습니다 기고) 2014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환경조각전 구재회, <서울특별시 마포구 와우산로94(상수동) 홍익대학교 F동 20302호>

wmakesn 2016. 4. 3. 21:53

2014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환경조각전  

구재회, <서울특별시 마포구 와우산로94(상수동) 홍익대학교 F동 20302호>



 구재회, 서울특별시 마포구 와우산로94(상수동) 홍익대학교 F동 20302,

2.3m X 1.2m X 2.1m (가변)

    구석진 곳에 스펀지 모양의 집 두 채가 있다. 원래 있었던 듯 무심하게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주의 깊게 본다면 그냥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스펀지 집은 자신의 크기와는 맞지 않는 곳에 들어가 있다. 스펀지라는 소재는 유동적이기는 하지만 유연성에는 한계가 있어 자기 자신을 구겨 넣어야 한다. 편하지 않은 듯 다른 장소로 옮겨 간다. 때로 편하게 보일 때도 있지만 완벽하게 들어맞는 공간은 그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서울특별시 마포구 와우산로94(상수동) 홍익대학교 F동 20302호>(이하 <20302호>)는 두 덩어리의 스펀지이다. 각각의 스펀지는 두 채의 집 형상으로 서로 붙어있다. 한 칸뿐인 집이지만 구색은 제법 갖추고 있다. 노란 단색의 스펀지에 새겨진 벽돌 모양에서는 빨간 벽돌이 눈에 선하다. 창문, 계량기, 문고리도 있으며 현관에는 호수가 적혀있다.

 

   302호는 작가가 살았던 옥탑방의 호수이고, 그 숫자를 다르게 배열한 203호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작업실이다. 거주공간과 작업공간인 격이다. 내 집 없는 모든 이들이 항상 떠날 것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는 것처럼, <20302호>는 전시 기간 동안 여러 번 옮겨 다녔다. 살만한 곳을 찾다가 괜찮겠다 싶은 곳이면 다시 자리를 잡았다. 만만치 않은 무게의 스펀지 집 두 채를 옮기는 것은 이사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지만, 조금 더 괜찮은 곳이 있을까 찾아다닌다.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집은 안정을 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하지만 스펀지로 만들어진 <20302호>는 유약하다. 쉽게 더러워지고 너덜너덜해진다. 서 있는 모습 또한 위태롭다. 구석에 대각선으로 비집고 들어가 땅에 발 딛지도 못하고 허공에 매달려있다. 이보다 편한 장소를 찾을 때도 있지만, 그 곳에서도 낑겨 있는 건 매한가지이다. 그렇게 옮겨 다니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이 현실의 모습이다. 내 집 마련은커녕 계약 기간이 만료될 때 마다 불안해해야 한다. 모퉁이 한 구석이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그 많은 노는 땅은 모두 임자가 있다. 미술이라는 지대도 그렇다. 권위로 가득 찬 그곳에서 함께 살아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럼에도 살기 위해서는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수밖에 없다. ‘아프니까 청춘’이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청춘이든 아니든 덜 아파야 한다.


 


  <20302호>는 우리의 상황을 보여주지만 냉소나 체념은 아니다. 덜 아프기 위해 자신의 자리를 만들려는 움직임이다. 틈이 없는 공간(space)에는 거대서사만 있을 뿐 개인의 이야기는 없다. 지각할 수 있는 감각은 제한되어 있으며 개인의 경험은 말소된다. <20302호>가 전시된 환경조각전도 마찬가지이다. 전시장을 벗어난다는 이유로 눈에 띄는 형태를, 흠집 하나 없는 매끈한 상품처럼 좋은 퀄리티를 요구받는다. 작품들은 밖으로 나왔지만 강요의 틈바구니에서 그저 물리적인 공간을 떠돌게 된다. 스펀지 집은 이 공간을 장소(place)로 변환시킨다. 필연적으로 부유하는 삶이지만 적극 나서서 자신이 위치한 땅을 경험하며 스스로의 장소로 만드는 것이다. 이로 인해 견고하게만 보이던 공간에 균열이 생기고 개개인이 들어설 장소가 생긴다. 두 채의 스펀지 집은 스스로를 변형시켜가며 힘겹게 자리를 만들어간다.

 

   이 과정에 스펀지라는 소재는 적극적으로 동참한다. 스펀지는 상처 입기 쉽다. 그러나 <20302호>가 입은 상흔은 능동적인 흔적이다. <20302호>의 스펀지는 위치한 공간을 자신의 감각으로 온전히 지각하기 위해 그 곳을 흡수한다. 그 결과 모양이 변형된다. 스펀지의 탄력성에는 한계가 있어 복원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완벽하게 원형으로 돌아오지도 못한다. 그렇게 이동하며 경험하는 장소마다 쌓이는 상흔은 굳은살이 된다. 틈을 내어주지 않는 공간과의 마찰로 인해 생긴 단단한 살이다. 

 


   살아가는 매 순간이 투쟁이다. 살아갈 틈새는 없고 그로 인해 자신의 존재마저 희미해지는 공간에서 애써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20302호>는 부유의 삶을 거부한다. 스펀지 집이 비집고 들어가는 구석은 단지 물리적인 공간만은 아니다. 개인의 사유는 배제하고 거대한 논리만이 지배하는 현실의 공간이다. <20302호>는 덜 아프고 더 잘 살기 위해 계속해서 움직인다. 그리고 이동의 과정은 스펀지 집에 아로새겨진다. 형상은 결코 완성되지 않지만, 자신의 감각으로 지각한 장소들을 몸에 새겨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20302호>는 이동할 수밖에 없는 불안정한 삶 속에서 스스로를 확립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원문 

http://blog.naver.com/uploadsoon/220056595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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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홍익대학교 조소과 환경조각전 이정원 <홍익발언대> 

http://blog.naver.com/uploadsoon/220092250562

 2014 홍익대학교 조소과 환경조각전 총평

http://blog.naver.com/uploadsoon/220092316435